하나페페 마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흔들다리를 건넜다. 1911년에 지어졌고 태풍 이니키 이후 원형을 복구했다는 다리는 낡은 목재와 녹슨 강철로 만들어져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렸다. 또한 바람이 불고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꽤 격렬하게 흔들렸다. 나는 양쪽 난간을 힘주어 잡으며 하나페페 마을 사람들은 그 정도 흔들림쯤 감수하더라도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파손되었을 때 더 튼튼하고 현대적인 다리를 놓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대로 만들어서 여태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가이드는 이어 각자 자유롭게 마을을 둘러보라고 했다. 나는 우선 마을을 눈으로 훑었다. 1950년대 초반까지는 꽤 번화했다지만 현재도 100년 전 모습과 거의 같다는 마을에는 과연 흔한 체인점도, 반짝이는 현대식 건물도 없었다. 다리도 그대로 복구했듯이 마을의 건물 역시 파손되더라도 원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고치며 사는가 보았다. 그래서 관광객들만 지운다면 그곳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과거, 오래된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Talk Story Bookstore 간판이 보였다. 얼른 그 앞으로 갔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매장 위치를 옮겼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여행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독립서점이었기에 아쉬웠다. 와이메아 쪽으로 5분만 운전해서 가면 된다지만 가이드와 함께 단체로 움직이는데 거길 찾아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가게로 발을 옮겼다. 바로 근처에는 운영 시간인데도 문을 닫은 곳이 많아서 독립서점에 못 간 서운함이 더 커졌다.
그래도 창 너머로 안을 슬쩍 들여다보고 열려 있는 갤러리 몇 군데에 들어가 구경하면서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야생닭의 움직임과 자세를 다양하게 표현한 그림, 만화영화 릴로와 스티치를 주제로 한 장식품, 스티커와 의류, 꽃과 거북이 모양이 올라간 양초, 하와이 풍경 그림 등 아기자기한 작품이 즐비했다. 여타 관광지에서처럼 물건을 팔아보려 애쓴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고즈넉하고 소박했다. 예술가의 밤 행사가 열린다는 금요일은 어떨지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일행과 약속된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데 오래된 트럭과 주유기가 나타났다. 마을 쪽으로 향할 적에는 예술인들이 사는 곳이라 이런 조형물도 있구나, 하고 그냥 지나쳤었다. 빨리 마을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썩 만족스럽지 않았던 마을 구경의 아쉬움도 달랠 겸 가만히 서서 다시금 살펴봤다. 원래의 효용은 잃은 고철이었지만 짙은 초록 바탕에 진분홍빛 꽃이 가득 그려있었다. 트럭 짐칸 위에는 생생한 부겐베리아 꽃이 만발했다. 누군가 가끔 거기에 올라가 물을 주고 꽃을 관리하는 모습이 절로 상상되었다. 트럭과 주유기, 꽃, 그리고 내 상상 속 사람. 꽤 조화로워서 마음이 푸근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제야 이 마을이 왜 ‘Biggest Little Town’으로 불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조용하게 자연과 조화되어 사는 하나페페는 쓰고 버리는 것에 익숙하며 어떻게든 자본과 연결하려는 현대 사회에서 보기 힘든 곳이었다. 마을의 흔들다리에도 그저 예전 모습을 간직하겠다는 게 아니라 마을의 속도와 삶에 대한 철학, 조금 불편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낡고 멈춘 것 위에 피어난 생명, 트럭 위의 꽃에서는 팔리기보다는 피는 것 자체에 삶의 무게를 두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그 마을과 사람들은 하나페페, 즉 ‘부서진 만’이라는 이름처럼 완벽하지 않은 공간에서도 아름다운 삶은 계속된다는 걸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 전체로서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실천하고 있다고나 할지.
다음 일정을 위해 차에 올랐다. 하루에 카우아이섬을 둘러본다는 여행 리듬에 몸을 맡긴 나는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창밖으로 트럭과 부겐베리아를 스쳐 지나가며 생각했다. 급히 지나갈 때는 보지 못한 낡은 트럭의 아름다움을 뒤늦게라도 발견해 다행이라고. 여기가 느긋한 게 아니라, 우리가 조급한 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나도 이런 마을에서라면 피는 것 자체에 만족하는 예술가가 되어 있었을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