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주워 먹은 햇살 한 입

by 괜찮은 작가 imkylim


망고 제철인 여름에 하와이를 방문한 내게 망고는 당연히 먹어봐야 하는 과일이었다. 하와이에는 50여 종의 망고가 있다는데, 내가 현지의 마트와 파머스마켓에서 직접 본 망고 이름만도 haden mango, long green mango, rapoza mango, piri mix, keiti mango. 종류별로 다 먹어볼 수는 없었지만 모양과 빛깔이 조금씩 다른 망고를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망고는 직접 주워 먹은 망고다.


카우아이섬 와이메이아 마을의 거의 모든 집 마당에는 키 큰 망고나무(주로 haden 혹은 rapoza)가 있었고 바닥에는 잘 익은 망고가 수북했다. 주워도 된다는 말에도 주저하자, 가이드는 마침 마당에 나와 있는 주인에게 다가갔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주인의 느릿한 몸짓은 한적한 시골의 인심 좋은 노인 느낌이었다. 가이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오며 마음껏 주워 가랍니다, 하고 우렁찬 소리를 냈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차에서 내려 망고나무 아래로 갔다. 깨지거나 지저분한 걸 빼고도 주울 망고는 차고 넘쳤다. 농약도 치지 않은 거라고 해서 앞니로 껍질을 슬쩍 벗기고는 노랗고 부드러운 속살을 베어 물었다. 햇살을 머금은 따뜻한 과육이 입안 가득, 망고를 든 손가락 사이로 달콤한 과즙이 흘러내렸다.

주운 망고 나무 위에.jpg
내 손안에 망고.jpg
망고 줍줍의 추억

그곳의 망고는 마트에 진열된 것보다 크기가 작았다. 솎아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햇빛을 충분히 받아 저절로 툭 떨어진 열매에는 달콤한 향이 풍부했다. 빛깔도 선명하고 먹음직스러웠다. 거기에서는 관광객이 그냥 집어가도, 닭이 쪼아 먹어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나라도 마당 앞에 널려있어 어차피 나 혼자 먹지 못할 양이라면 누가 가져다 먹는다면 오히려 좋을 것 같았다. 나도 먹고 남도 먹는 풍족한 나눔. 흔해서 대접을 받지는 못하지만 가격을 매길 수조차 없이 귀한 자연의 선물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선물 고를 일이 있었다. 카카오톡 선물함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문득 애플망고에 시선이 멈췄다. 너덧 개가 든 상자에 39,900원. 한국으로 수입된 망고는 병해충 방제와 운송 및 검역, 후숙을 촉진하는 에틸렌 가스 처리, 거기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마케팅까지 더해져 고가의 선물이었다. 선물은 싸든 비싸든 마음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그 말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처럼 때로는 허망해서 마음의 크기만큼 돈을 쓰게 만든다.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가 카우아이에 살면서 태국산 수입 망고 몇 개를 상자에 담아 이웃에게 ‘선물’이라 내민다면? 이웃은 마당에 농약도, 약품도 안 친 더 좋은 게 있는데 왜 그런 걸 주냐며 어이없어할지도 모른다. “이건 여기 널린 거랑 차원이 달라요, 얼마나 비싼 줄 아세요?”라고 말하면 오히려 좋은 걸 두고 나쁜 걸 돈 주고 사는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정말 귀한 것은 대접받지 않아도 빛나고, 대접받는다고 해서 모두 귀한 것은 아니라는 단순한 진실을 입안에 고인 침과 함께 천천히 씹어 삼킨다.

길바닥 망고.jpg 길바닥에 널린 망고
망고줍기.jpg 망고 앞을 서성이던 청년 둘, 반면 서울에서 오신 한 멋쟁이 할머니는 많이 주워서 젊은이들에게도 쥐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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