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억이나 감정을 문자로 남기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나 암각화, 문신, 낙서, 책, SNS 게시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록을 남겨왔다. 하지만 새겨지기를 원한 적 없는 존재에 흔적을 남기는 건 결이 완전히 다르다.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영화 ‘아바타’에서 생명의 나무로 등장하는 반얀트리를 무수히 마주쳤다. 처음엔 기이한 수형이 신기했다. 한 그루에서 나온 가지 일부가 땅에 닿아 또 뿌리를 만들고 다시 위로 자라는 특성 때문에 아무리 봐도 여러 그루가 얽힌 양 보였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삐뚤삐뚤 글씨였다. 날짜로 보이는 숫자에 이어 한글도 있었고, 영어와 일어, 해독할 수 없는 언어와 기호도 있었다. 하트모양은 흔했다. 나무 둥치와 가지, 나뭇잎에도. 특히 Kauai coffee visitor 센터 입구에서 만난 나무는 눈높이쯤 되는 잎사귀에 낙서가 빼곡했다.
도대체 왜 저런 철없는 짓을 하는 거지? 하는 반발심과 함께 어디에선가 봤던 시 한 편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온 뒤 사진을 들여다보다 기억을 더듬어 시를 다시금 찾아 읽었다.
그대 이름 / 장 콕토
그대 이름을
나무에 새겨 놓겠습니다
하늘까지 우뚝 치솟을
커다란 나무줄기에 새겨 놓겠습니다
나무는 대리석보다 한결 낫지요
새겨 놓은 그대 이름도 함께 자랄 테니까요.
예전에 읽었을 때는 누군가 장난으로 지은 시인 줄 알았다. 장 콕토라는 이름도 낯설었다. 하지만 검색 끝에 그가 프랑스의 시인이자 영화감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진지한 시도 많이 지었다. 은유와 상징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원문과 해석을 찾았다.
장 콕토의 시: 그대 이름 (Ton Nom)
J’ai gravé ton nom sur un arbre et l’écorce,
Comme une chair vive, a pleuré ton absence.
Le soleil s’est couché dans la blessure,
Et l’arbre a saigné longtemps.
번역 (직역에 가까운)
나는 나무에 당신의 이름을 새겼고,
그 껍질은 살아 있는 살처럼
당신의 부재를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태양이 그 상처 속으로 저물었고,
나무는 오랫동안 피를 흘렸습니다.
그랬다. 나무에 이름을 새기라는 단순한 뜻이 아니었다.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절박함과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실의 고통을 나무에 새기는 것으로 표현한 거였다. 소리내어 울 수도 없는 생명의 고통이 떠올랐다. 살아있는 살처럼, 에서는 작은 생채기도 쓰라리고 아팠던 기억이 났다. 만약 움직일 수 없는 나에게 누군가가 강제로 상처를 낸다면?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무에 이름을 새기면 그 상처를 통해 세균이나 곰팡이, 해충 등이 침투해 나무가 썩을 수도 있다. 또한 깊은 상처가 나면 물관과 체관이 망가져 나무 건강에 해를 입힌다. 더군다나 나무에 새겨진 낙서를 보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구든 제발 나무에 이름을 새기지 말기를 바란다.
하와이에 유난히 이름 새겨진 나무가 많았던 건 그곳의 아름다움과 여유에 취한 나머지 흔적이라도 남겨두고 싶었던 관광객이 많아서일 것이다. 게다가 꽃말이 변함없는 사랑, 영원한 행복이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해가 용인을 의미하지는 않는 법. 나무에 글씨를 남긴 그들에게 한마디 조롱을 던지고 싶다.
“글씨 쓸 수 있는 거 자랑하고 싶었어요? 하필 여기에?”
나는 다시금 힘주어 말하고 싶다. 장 콕토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