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멸종 위기종 보호의 아이러니
포이푸우 해변에는 하와이 녹색바다거북(Hawaiian Green Sea Turtle)과 하와이 몽크바다표범(Hawaiian Monk Seal)이 자주 나타난다고 했다. 유난히 인파가 몰려있는 곳으로 가 보니 과연 거기에는 거북이 세 마리가 나와 있었다. 가끔 고개를 조금 들거나 느리게 좌우로 움직일 뿐 누가 쳐다보든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거북이 주변 모래밭에는 주황색 고깔이 일정한 간격으로 둘러져 있었다. 거기에 더해 보호 요원 몇몇이 혹시나 모를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고 질문에는 친절히 답해 주고 있었다. 나는 거북이가 나오면 언제 들어가는지, 밤에는 어쩌는지 물어봤다. 요원은, 체온을 유지하러 올라온 거북이는 보통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있다고 했다. 밤늦게까지 있을 때도 있다고.
바다표범은 어디에 있는지 묻자, 보호 요원은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거기로 가 보라고 했다. 녀석들이 자주 나타나는 장소가 달라서 거북이 담당, 바다표범 담당이 따로 있는가 보았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씩씩하게 걸어서 갔지만 바다표범은 없고 건장한 남자 둘이 천막 아래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바다표범이 오전에 나왔다가 바다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나오는 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와 같이 하와이 녹색바다거북과 하와이 몽크바다표범은 멸종 위기종이라서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보호의 조건이 멸종 위기라니. 보호받는 이유가 ‘사랑받아서’가 아니라 ‘사라질 위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이해되면서도 묘했다. 어쨌든 늦게라도 관심을 갖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무척 의아했다. 보존을 내세우면서 ‘야생’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들게 하는 건 좋은 접근일까? 평소에 알지도, 관심도 없었지만 멸종 위기종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튿날, 알라모아나 쇼핑센터에 들른 김에 서점에 갔다. 거기에서 하와이 주제의 책을 둘러봤다. 멸종위기, 내지는 멸종한 동식물을 다룬 책이 있었다. 하와이는 ‘세계 멸종위기종의 수도(Endangered Species Capital of the World)’라고 불린다고 한다. 육지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외딴섬이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한 고유 생물이 많은데 사람과 함께 들어온 외래종이 이들을 위협한단다. 느닷없는 포식자 내지는 경쟁자에 대한 방어 능력이 약할 수밖에 없어서다. 또한 도시 개발과 관광 등으로 인해 원래의 서식지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 책을 보면서 입국심사를 받느라 줄을 섰을 때 본 갈색나무뱀 사진이 붙은 경고문이 떠올랐다. 외래종이 들어오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내용인 듯했는데 큰 글씨 말고는 눈에 보이지 않아 읽지 못했다. 더군다나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구역이었다. 책 '후투티를 기다리며'에 따르면 그 갈색나무뱀의 본 고장은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군도의 여러 섬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거기 있던 미군 사령부가 괌으로 옮길 때 우연히 함께 가게 되었다. 갈색나무뱀은 괌에서 동박새, 공작비둘기, 괌딱새, 꿀새를 등을 절멸시켰고, 이제 농가의 닭까지 잡아먹고 있다고 한다. 새와 박쥐가 사라져 괌에는 벌레가 엄청나게 많아졌고 몇 식물들은 열매도 맺지 못하는 등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한다. 고작 삼십 년 만에. 즉, 하와이 공항에서 본 것은 그 무서운 갈색나무뱀에 대한 경고였다.
보통 하와이에는 뱀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잔디밭을 걸을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읽었기에 아예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관광객이 연일 드나드는 곳이니 신경을 곤두세워도 생태교란에 노출되기 쉬울 거였다.
사실 공룡의 멸종은 박물관과 책 너머의 이야기일 뿐이다. 직접 본 적 없으니 슬픈 감정이 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만약 거북이, 까치, 사과나무처럼 살면서 직접 봤던 것이 사라진다면 분명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감정이 있어야 아낄 수 있고 슬퍼할 수도 있는 거니까. 불현듯 보존을 내세우며 관광객이 몰려들게 하는 것의 아이러니가 다시금 떠올랐다. 보호에는 어떤 관심이 필요한 걸까.
환경윤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알도 레오폴드는 ‘모래군의 열두 달’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야생보전은 자기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슴에 간직하기 위해서는 보고 쓰다듬고 해야만 하는데, 충분히 보고 쓰다듬은 다음에는 가슴에 간직할 원생지대가 남지 않는다.”
우리는 보고 쓰다듬다 보면 소유하고 싶어진다. 예쁜 꽃을 보면 꺾어서 화병에 꽂아두고 싶고, 귀여운 동물을 보면 데려다가 키우고 싶은 마음처럼 말이다. 사랑으로 접근하더라도 자연의 존재 방식이 왜곡되거나 파괴될 수 있다. 그러니까 레오폴드의 말은 그만큼 적절한 거리와 절제가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내가 포이푸우 해변에 나와 있던 거북이라면, 아무리 건드리지 않을지라도 사람이 없는 게 더 편할 것이다. 바다표범이 매일 나오지는 않는 게 생존 개체수가 적다는 이유도 있겠지만(35마리 이하라고 함), 어쩌면 햇볕을 쐬고 싶어도 일주일에 최소한 두어 번은 인간이 없는 곳에서 지내고 싶어서 숨어 있기를 택했을 수도 있다. 우리 중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 혼자 골방에 머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행하는 보존의 방식이 정말 그들이 원하는 방식일지 가늠해 보면 아득한 기분이 든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멀찍이 바라보는 게 깊은 사랑일 때도 있으니까.
그리고 가만히 기도해 본다. 아름다운 이 풍경을 미래 세대에게도 물려주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