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셋째 날은 ‘바다의 날’이었다. 와이키키에서 물에 몸을 적신 뒤, 포트 데루시와 알라모아나 해변을 지나며 하루를 바다에 맡겼다. 그리고 해 질 무렵엔 다시 숙소 앞 와이키키 비치에서 일몰을 감상했다.
바다는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 파도치는 물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물결이 몸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도, 몸이 물에 떠밀리는 기분도 좋았다. 한편으로는 진즉 수영과 서핑을 배우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어른거리는 물살 속 반짝이는 물결인 줄 알았던 것이 알고 보니 물고기 떼인 적도 있었다. 작은 것만 아니라 제법 큰 것도 있었고 열대 바다답게 색도 모양도 독특한 녀석들이었다. 내가 정말 이국의 바다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차로 10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바다는 각기 다른 얼굴을 품고 있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꼽으라면 나는 알라모아나 해변으로 하겠다. 공원과 요트,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 조화롭고 분위기가 평화로웠다. 물결 위로 반짝이는 윤슬은 눈이 부신데도 자꾸 쳐다보게 할 만큼 황홀했다. 한편, 하와이의 대표 격인 와이키키는 오히려 덜 매력적이었다. 이름값만큼 화려했지만 그만큼 번잡했고 방파제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눈에 거슬렸다. 실제로 와이키키 해변은 인공적으로 모래를 쌓아 만든 '인공 해변'이라고 한다. 특히 방파제와 호안(護岸) 구조물은 침식을 막기 위한 노력이자, 자연의 흐름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었다.
낮의 바다도 좋았지만 나는 밤에 봤던 일몰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여행을 준비하며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 추천받았던 곳은 코올리나 라군이었다. 하지만 하와이의 퇴근 시간대에 이동해야 하는데 숙소와 거리가 있어 와이키키에서 해 지는 하늘을 보기로 했다. 일몰 시각은 19시 18분, 우리는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바닷가로 나섰다.
어둑해진 하늘에는 넓은 스펙트럼의 오렌지빛이 번지고 있었다. 점점 어두워지며 하늘빛은 짙어지고 여러 층위의 보랏빛이 겹겹이 더해져 신비로운 장관이 펼쳐졌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야자수 너머로 비치는 조명, 구름과 파도가 어우러졌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 너머로 어둠 속에서 꿈틀대며 달려오는 밤바다의 물거품은 마치 알 수 없는 생명체처럼 보였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 속 바다 괴물이 절로 상상되었다. 낯설고 두려운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나는 하늘에 별이 떠오를 때까지 맨발로 해변을 거닐며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이후 며칠 동안 유심히 하늘을 봤지만 그날만큼 완벽한 일몰을 만나지는 못했다. 이튿날 저녁 알라모아나에서 만난 경치도 아름다웠지만 결코 전날만큼은 아니었다. 그날 기상과 공기의 흐름 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어쩌면 코올리나 라군에서는 더 멋진 일몰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침 그날 마음먹고 일몰을 보러 나갔고, 그 장면이 상상 이상으로 인상 깊었다는 점이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내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그리고 마음까지 행복감에 일렁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