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푸우 등대로 향하는 길. 구름 사이로 파고드는 햇빛이 따가웠지만 걷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스팔트를 깔아놓은 구불구불한 완만한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게다가 바다에서 연신 불어오는 바람이 무척 시원했다. 거긴 오아후 섬 동쪽 해안이므로 무역풍이 정통으로 불어오는 곳이었다. 낮이라 해륙풍까지 더해져서 해안 절벽의 바람은 특히 거세었다. 몇몇 나무는 아예 옆으로 누워 자라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몇 번이고 멈추어 서서 양팔을 열어 바람을 맞았다. 힘차고 기분이 좋아지는 바람이었다.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마카푸우 등대는 1909년에 세워졌으며 지금도 미국 연안경비대가 항로보조시설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인은 등대 출입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바다를 배경으로 멀찌감치에서 봤다.
트레일 막바지, 비로소 하와이로 출발하기 전까지 쓰던 소설 ‘무인도의 개구리’의 영감이 된 토끼섬이 보였다. (2. 토끼섬으로 가는 길목에서 개구리에 붙잡혔다)
그 섬의 별명에 얽힌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역사적인 배경이다. 1880년대, 인근 와이마닐로 농장 주인이었던 존 애덤스 커민스가 섬에 토끼를 풀어놓으면서 토끼섬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토끼는 외래종이었다. 게다가 번식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군대가 동원되어 토끼 전쟁까지 치렀지만 실패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아무튼 존 애덤스 커민스가 토끼를 풀어놓은 뒤, 토끼는 급속히 번식하면서 섬 생태계가 무너졌다. 결국 1994년에 토끼를 박멸했고 현재는 조류 보호구역이다. 연구나 모니터링 목적이 아니면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는 수많은 바닷새, 하와이 몽크물범, 풍부한 해양 생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토착 생태 복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생태계는 섣부른 인간의 개입으로 손쉽게 무너지지만, 너무 늦기 전에 적절히 대처하면 서서히 복구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토끼섬이 그 증거다.
두 번째는 섬의 생김새에 관한 것이다. 섬의 윤곽이 귀가 긴 토끼가 엎드린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도 그 윤곽이 토끼 머리처럼 보이기 시작한 뒤로는 줄곧 얼굴만 내밀고 수영하고 있는 토끼로 상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섬의 정식 명칭은 Manana lsland이다. manana는 스페인어로 ‘내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마카푸우 전망대에서 그 섬을 보며 생각했다. 나처럼 멀리서 섬을 본 사람들끼리 “저기는 나중에 가자” 고 미루다가 붙은 이름일까. 아니면 내일도 뜨는 해를 기대하며 붙인 이름일까. 그런데 인류의 무분별한 간섭에 생태계가 무너졌다가 복원되는 과정을 떠올리면서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내일의 희망이 있다’는 신의 엄중한 경고가 담긴 이름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