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이에게 바치는 부끄러운 고백

by 괜찮은 작가 imkylim

요리도 할 수 있는 숙소를 잡았기에 랍스터를 사다가 직접 조리해서 먹었다. 귀국 하루 전, 한국에 가져올 선물도 살 겸 한 번 더 장을 봤다. 간 김에 랍스터를 또 사다 먹을까 했는데 마침 다 떨어져서 대신 농어(sea bass)를 샀다. 숙소에 있는 소금과 후추, 전날 마시다 남은 화이트와인만 조금 뿌린 뒤 오븐에 구웠다. 뽀얀 생선 살이 촉촉하면서 순하고 부드러웠다. 미세한 단맛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껍질은 적당히 쫄깃하면서 고소했다. 소스 따위 필요 없었다. 이번 하와이 여행 식사 메뉴 중에 내 입에는 농어가 단연 최고였다. 그날 랍스터를 일찌감치 다 사 간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까지 들었다.


우리가 먹은 농어는 ‘하푸우푸우’라는 그루퍼 종으로 하와이 제도 주변에만 서식하는 특별종이라고 했다. 영어 이름으로는 하와이안 블랙 그루퍼. 다듬어 놓은 살코기로 사 먹었기에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 궁금했다. 찾아서 보고는 "아, 이렇게 생긴 물고기구나!" 하다가 문득 물에서 나는 고기라니, 너무 인간 위주의 발상이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돼지, 소, 닭은 살아있을 적에는 차마 고기라 부르지 않으면서 멀쩡히 살아있는 녀석들에게 물고기라니!


그렇다고 ‘생선’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생선이야말로 먹기 위해 잡은 신선한 물고기라는 뜻이니까. 뭉뚱그려 바다 생물이나 어류라고 하는 것도 우스웠다. 우리가 길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어이, 인류!”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인간이 만든 언어니까 어쩔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언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떠올리면 물에 사는 생명에게 고기라는 이름을 붙인 폭력성이 미안한 노릇이었다.


이런 식의 인간 중심적인 어휘는 생각보다 많다. 생명 자체로 칭하기보다는 인간에게 쓸모없으면 ‘잡초’, 효능이 있으면 ‘약초’라 하고, 해를 끼치면 ‘해충’, 도움을 주면 ‘익충’이라 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활동이 미치지 않은 곳을 ‘미개발지’라 칭하거나 인간이 학술적, 문화적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야 ‘천연기념물’이 된다. 즉, 대상을 있는 그대로 불러주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정의한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사고는 20세기 생태학자 알도 레오폴드에 의해 비판받았다. 그는 이 땅은 인간에게 젖과 꿀을 공급하기 위해 존재하는 상품이 아니라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로서 토지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생태학을 넘어선 ‘토지 윤리’다. 사실 지극히 당연한 건데, 우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나무와 광물에 ‘천연자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상품 내지는 착취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인간이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지만 그 자기중심성에 깃든 오만함과 폭력성을 생각하면 고개를 내젓게 된다. 인간만 최고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된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우리 안에 널리 퍼지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최근 동물권 및 환경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물고기라는 단어 대신 물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뜻으로 ‘물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단다. 나의 미각에 행복을 준 하와이안 블랙 그루퍼의 모습을 다시 보며 나의 표현을 고쳐본다. “이렇게 생긴 물살이구나!” 처음 사용해 봐서 그런지 영 어색하지만, 기존의 오만한 언어 습관을 고칠 수만 있다면 자주 사용하고 싶다.

농어 생긴 모양.jpg
농어.jpg


맛있게 먹어놓고 무슨 위선적인 지껄임인가. 다른 생명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살 수도 없는 주제에. 아무튼 모른 척하고 살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 한쪽에 부끄러움이 스며든다. 랍스터를 다 사 간 사람에게만 감사할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살을 내어준 물살이, 하와이안 블랙 그루퍼에게 더더욱 감사할 일이었다.


고마워, 맛있었어.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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