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연습을 하면서 “~씨는 성격이 어때요?”하고 물었을 때, 한 학생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감정적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잘합니다.” 학생의 대답을 듣고 나자, 한국어에서 ‘적’이 낱말의 어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감정: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 감정적: 마음이나 기분에 의한 (것).
* 공감: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우리 감정은 좋다가 싫고, 행복하다가 우울하고, 기쁘다가 슬퍼지는 등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감정이라는 낱말 자체에는 부정적 의미가 없지만, 유난히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날은 심리적으로 지치지요. 감정에 북받치다, 감정이 격해지다, 감정에 불타오르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라는 말에도 감정을 어찌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묻어나요. 그래서인지 감정적이라는 말에는 마음이나 기분에 휘둘려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다소 부정적인 어감이 있습니다. 공감을 잘합니다, 와 연결하기에 적절하지 않지요.
공감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적절히 반응해 주는 특징이 있어요. 한창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이 그런 걸 하나하나 짚어서 설명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과 중급 1 교재에서 배웠던 어휘를 고려할 때, 다정하다는 의미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학생은 왜 ‘감정적’이라는 낱말을 떠올렸을까요? 그 배경에는 요즘 유행하는 MBTI가 있을 듯합니다. MBTI에서 보통 T(Thinking)를 사고형, F(Feeling)를 감정형이라고 합니다. T는 논리와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성향을, F는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파악하며 판단하는 성향을 가리키지요. Feeling을 감정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학생은 MBTI에서 F가 나왔고 F를 한국인들이 감정형이라고 하는 걸 들어본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공감을 잘하는 게 꼭 F의 특징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흔히 그렇게들 말하니까요. 그리고 학생 머릿속에 내향적, 외향적, 적극적, 소극적, 이런 ‘적’이 붙는 성격 어휘가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결국 감정적이라는 어휘를 생각한 게 아닐까요.
한국어에는 ‘감정/감정적’처럼 ‘적’이 붙으면서 단순한 특성을 넘어 사회적 맥락이나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예가 꽤 있습니다. 같은 ‘적’이라도 어떤 것은 부정적으로, 어떤 것은 긍정적으로, 또 어떤 것은 문맥에 따라 양쪽을 오갑니다.
‘계산’은 수를 센다는 의미지만 ‘계산적’이라고 하면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며 영악하게 행동한다는 어감이 붙습니다. ‘사무’는 주로 문서를 다룬다는 뜻이지만 ‘사무적’은 행동이나 태도에 진심이나 성의가 없고 기계적이거나 형식적이라는 의미지요.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하는데, ‘가족적’이라고 하면 가족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 온화하고 친밀한 느낌이 붙습니다. ‘도전’은 어려움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의미지만 ‘도전적’은 도전을 즐기거나 과업이 성장과 활력으로 이어지는 어감입니다.
‘현실’ 자체는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상태를 말하는 중립적인 낱말입니다. 현실적이라고 하면 허황하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긍정적 의미가 될 때도 있고, 문맥에 따라서는 냉혹하다거나 속물적이라는 부정적 어감으로 쓰일 때도 있어요. ‘이상’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를 말하지만 ‘이상적’은 높은 목표를 뜻할 때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의미일 때도 있습니다.
‘적’이 명사에 형용사적 성격을 부여하면서 명사가 원래 가진 의미 중 특정 속성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감정적’에는 어쩌다가 부정적인 어감이 붙게 되었을까요? 그건 아마도 한국 문화에서는 이성적이고 절제된 태도를 미덕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인 듯합니다.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학생의 엉뚱한 발언을 두고 이렇게 곱씹는 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논리적인가, 창의적인가, 열정적인가, 이상적인가, 의도적인가. 스치듯 떠오르는 ‘적’들만 따라가도 제 안의 가치 판단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훤히 보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