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카페 서유숙(徐留宿)에서 정기 모임을 했다. 서유숙은 천천히 머물다 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건물과 정원의 느낌이 단아했다. 야외에서 그리면 좋겠지만 습하고 햇볕이 뜨거워 우리 어반처스(어반 스케처스를 줄여서 내 마음대로 만든 용어, 어벤저스 패러디)는 실내로 들어갔다. 주말이라 손님이 많을 텐데 우리가 많은 장소를 차지하면 곤란했다. 서유숙의 여러 카페 건물 중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림에 집중한대도 내내 그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한 공간에 우리뿐이었다. 잔디밭에 돌아다니는 잔디 깎는 로봇청소기를 발견한 누군가의 귀엽다는 감탄에 다 함께 고개를 들어 쳐다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누군가 그림에 날짜를 적으며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되더라? 하자 빠른 템포의 답이 나왔다. 응, 오늘은 10일이고 장날이고 이마트 쉬는 날이야. 우리는 와르르 웃었다. 몇몇씩 조용히 이야기하며 그리는 날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렇게 우리는 서유숙에 머물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옹기종기를 택하는 것처럼 어반스케치를 하다 보면 몇 가지 제약에 부딪힐 때가 있다. 야외에서 그리는 게 가장 낭만적이지만 상황이 좋을 수만은 없다. 그리다가 쓰레기나 하수구 냄새를 맡아야 할 때도 있으며 벌레에 물릴 때도 있고 미세먼지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폭우, 거센 바람, 폭염도 있다. 야외 공간까지 있는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다. 여건에 따라 밖에서도 안에서도 그릴 수 있으니까.
카페라고 마냥 편한 건 아니다. 우리가 있는 테이블을 유심히 살피며 눈치를 주거나 여럿이 그림 그리는 건 곤란하다 말하기도 한다. 카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예쁘게 단장해 놓은 공간이 더러워질까 봐 얼마나 애가 타겠나. 그걸 알기에 우리는 일어난 자리를 깨끗이 하려 애쓴다. 가루가 나오지 않는 떡지우개를 쓰거나 일반 지우개면 가루를 말끔하게 치운다. 뚜껑이 달린 물통을 사용하며 물감으로 더러워진 물을 카페에서 버리지 않는다. 쓰는 공간을 최소화하려 팔레트도, 붓도 작은 걸 사용한다. 여타 그림을 그리면서 나오는 자잘한 쓰레기도 도로 챙겨 나온다. 회전율을 높여 매상을 높이고 싶을 카페 입장을 고려해 주문도 넉넉히 하는 편이다.
어찌 보면 다소 번거롭다. 그런데도 어반스케치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리러 나간다. 나가고 또 나간다. 굳이 왜? 사실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종의 선언문, manifesto가 있다.
1. 우리는 실내외에서 현장을 포착해 그림으로 남긴다.
2. 우리의 드로잉은 여행지나 사는 곳,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다.
3. 우리의 드로잉은 시간과 장소의 기록이다.
4. 우리가 본 장면을 진실하게 그린다.
5. 우리는 어떤 재료라도 사용하며 각자의 개성을 소중히 여긴다.
6.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함께 그린다.
7. 우리는 온라인에 그림을 공유한다.
8. 우리는 한 번에 한 장의 그림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즉, ‘현장감’과 ‘함께 그리기’가 중요한 뼈대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옹기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