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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27. 2024

소설_우롱차의 기습5화

  그런데 주방 아주머니는 오픈하고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일이 너무 많다며 인건비를 올려달라 했다. 내가 가게 운영이 안정화된 뒤에 생각해 보겠다 하자 그녀는 대번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국수 맛이 들쑥날쑥해졌다. 나는 표준화된 조리법을 만들어놓고 항상 일정한 맛을 낼 수 있게 하자고 했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책상 앞에서 공부만 했던 박사님이라 모르시나 본데, 음식은 손맛이라고요, 하며 느물거렸다. 참다못해 조리 과정을 내가 직접 보면서 배우겠다고 하자 주방이 좁은데 어쩌냐고 얼굴을 찡그렸다. 맛이 변한 것을 알아챈 손님들은 가차 없이 낮은 별점의 리뷰를 남겼고, 국숫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 나는 어쨌거나 음식은 제대로 만들자고, 이러다 손님이 다 끊기겠다고 아주머니들을 다그쳤다. 그러자 그녀들은 손님 없는 핑계를 왜 자기들에게 대느냐며 화를 내고는 가게를 나가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당분간 혼자 국숫집을 운영해 보기로 했다. 


  바로 이튿날, 김 씨가 국숫집에 찾아와서 아주머니들을 잘 달래가며 일을 함께했어야지 그렇게 내보내면 어쩌냐고 나를 나무랐다. 아주머니들은 내가 배운 척을 너무 많이 하고, 걸핏하면 커다란 몸집으로 주방에 들어와 비좁다며 김 씨의 아내에게 툴툴거렸다고 했다. 그녀들이 김 씨 아내의 친구였다는 사실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나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김 씨는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내쉬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니 곧 뚝심을 발휘하리라 믿는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내가 내놓은 멸치국수가 썩 맛있지 않았는지 자신 없으면 이제라도 열무국수만 해도 될 텐데,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못 들은 척 멸치국수를 입에 욱여넣고 소리 내며 먹었다.


  열무국수는 감칠맛 나는 열무김치 덕에 만들기 쉬웠고, 만두는 마트에서 파는 수제만두를 사다 쓸 생각이었다. 그러니 김 씨의 말대로 열무국수만 한다면 식재료를 준비하는 일이 부쩍 줄어들 터였다. 그러나 나는 멸치국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요리 방법을 찾아보았고 훌륭한 국수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이를테면 육수용 멸치에서 멸치 똥을 말끔하게 제거하기 위해 투박한 나의 손을 열심히 놀렸으며, 뜨거운 물에 익힌 면을 채반에 받쳐 헹굴 때도 그냥 찬물을 끼얹기만 하는 게 아니라 힘을 주어 문질렀다. 


  아무튼 김 씨는 꾸준히 손님들을 몰고 국숫집에 왔다. 장사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 못마땅했을 텐데도 그래 주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그러나 매출이 좋지 않아 필요경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었고, 김 씨에게 나눠줄 수익금도 점점 줄어들었다. 김 씨는 그러게 왜 공부밖에 모르던 사람과 손을 잡았냐고 아내가 질책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국숫집 매출액을 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은퇴한 뒤에 국숫집을 함께 운영하기로 했으니 당연히 걱정스러울 터였다. 나 역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잘 풀리지 않는 국숫집 운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우롱차를 마시며 마음을 달랬다. 나는 쉰 중반이 넘는 나이에 들어서야 거름망이 있는 찻잔을 마련했다. 심지어 예전에는 찻물을 한 번은 헹구듯 버리고 두 번째로 우려낸 차부터 마시는 것도 몰랐다. 이제는 아니었다. 우롱차와 같은 발효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우려내는 온도와 시간이 정해지고 비발효차인 녹차는 그보다 낮은 80℃ 정도에서 더 오랜 시간, 그러니까 이분 남짓이 적당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배워나가면 되는 거였다. 나는 손님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었으며 나의 멸치국수 만드는 솜씨 또한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조만간 상황은 나아질 거였다. 나는 그렇게 우롱차를 마시며 희망을 우려냈다. 


  줄어든 손님은 좀처럼 다시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든 국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건너편 안경원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왔기에 얼른 멸치국수를 해줬는데 아가씨는 다 먹지도 않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드디어 누군가에게 맛을 보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들떠 서두른 나머지 평소에 익힌 기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바보처럼 느껴져 기운이 쭉 빠졌다. 나를 대하는 김 씨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나 역시 장사를 그만두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그러다 어제 일이 터지고 말았다. 김 씨 부부가 함께 국숫집에 왔고, 김 씨의 아내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나를 무섭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장사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착한 자기 남편을 꾀어서 고생만 시킨다고, 여기 일을 돕느라 남편이 얼마나 힘들어하는 줄 아느냐고, 이제 조만간 은퇴이건만 여기에 매여서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있지 않느냐고. 나는 울컥해서 시설 투자금은 내가 냈다고 강조했다. 김 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두말할 것 없다고, 수익금을 나누고 싶어도 수익이 없는 걸 어쩌냐고 항변했다. 김 씨의 아내도 지지 않았다. 자기 남편이 낸 임대보증금은 투자금이 아니냐며, 그마저도 지난달부터는 월세를 못 내서 제하고 있지 않느냐며 다그쳤다. 정 장사를 계속하려거든 앞으로는 오롯이 혼자 하라고, 그러니 자기 남편이 낸 보증금에 해당하는 액수는 돌려받아야겠노라고도 했다.


  김 씨가 함께 일을 도모했던 사이인데 그렇게 모질게 굴면 안 된다고 조용히 아내에게 말했다. 그의 아내는 “그러게 왜 나한테 상의도 없이 일을 벌였어? 그건 이혼 사유야, 알아?” 하며 앙칼지게 쏘아붙이고는 국숫집 문을 거칠게 밀고 나갔다. 김 씨도 황급히 그녀를 따라 나갔다. 국숫집 앞 골목에서 김 씨는 무언가를 호소하듯 고개를 움직이고 손짓을 하며 열심히 아내에게 말했고, 그녀는 어깨를 들먹이며 벌게진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머리만 쥐어뜯었다. 나 때문에 김 씨 부부가 이혼할 지경까지 간 것 같았다. 김 씨 가정이 깨지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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