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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26. 2024

소설_우롱차의 기습4화

  농담이었다고 둘러댈까 하는데 김 씨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강 박사님께 괜한 부담을 드렸나 봅니다.” 나는 조금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차마 포의 이야기까지는 꺼낼 수 없어서 나도 국숫집을 해 보고 싶은데 혼자 할 자신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김 씨는 안경을 고쳐 쓰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하기야, 서로 도우며 살아야지요. 그리고 돈을 그냥 저금만 해 둬서 뭐 합니까, 될 만한 곳에 투자해서 불리는 게 좋지요.” 하고 말했다.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저금밖에는 한 게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그는 은근하게 웃었다. “공부와 연구에만 신경을 쓰시느라 주식이나 부동산은 안 하셨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아왔으니 다른 재미를 찾고 싶은 마음도 이해합니다.”


  내 마음 어딘가가 말랑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형에게 기대고 싶은 아우의 마음이 되어버렸다. 어디서 갑자기 그런 넉살이 생겼는지 평소의 나답지 않게 고개를 숙이며 “많이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형님으로 모시면서 제가 배우겠습니다.” 하기까지 했다. 김 씨는 그게 무슨 당치 않은 말이냐고 목을 뒤로 빼면서도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내친김에 “형님, 말 놓으세요.” 했다. 그는 못 말린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곧이어 나에게 언제쯤 개업을 하고 싶은 거냐고 물었다. 나는 김 씨와 함께 일 년 뒤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그 자리가 내년까지 남아있으려나, 하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은 아직 개발이 덜 된 지역이라 월세가 저렴하지만 내년에는 어림없을 거라고도 했다.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최대한 도울 테니 가능한 한 빨리 오픈해서 자리를 잡으면 어떨까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내게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인테리어 업자는 물론이거니와 식재료 할인마트를 하는 젊은 부부도 알고 있으니 그들을 통해서 경비를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또한 요리를 잘하는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며 건물 주인에게 다섯 달까지는 월세를 내지 않고 장사할 수 있게끔 부탁해 보겠노라고도 했다. 


  나는 국숫집 운영을 나 혼자 하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떨리는 내 목소리를 들은 김 씨는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을 많이 데리고 가 매출도 올려주겠다고 했다. 요리사도 있고 손님도 있는데 걱정할 게 무엇이냐고. 대신 초기 투자 비용 60%를 내가 부담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자신은 40%를 부담하되 수익금의 20%만 갖겠다고. 일 년 뒤부터는 같이 일하고, 수익금도 제대로 나누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무척 불안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김 씨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 박사님, 아니 아우. 어차피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한 거고, 솔직히 국수 파는데 박사가 무슨 소용이야. 내가 오픈에 필요한 준비를 하는 동안, 아우는 어떻게 해야 장사가 잘될지 고민해 봐요. 새로 배우는 거지. 배우는 거 잘하잖아.”


  그는 어색한지 존댓말을 섞어서 말했다. 그래도 나는 우리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었고 내 옆에 형님이라 부를 동업자가 생긴다는 게 설레면서 든든했다. 고작 일 년이고,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데 자꾸 뒤로 빼고 있을 수도 없었다. 각자가 잘하거나 필요한 역량에 집중해 일을 나누고 최선의 결과를 얻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건배를 청했다.


  우리는 당장 사업 구상을 시작했다. 김 씨는 열무국수만 전문으로 팔면 어떻겠냐고 했다. 요즘은 열무국수가 사계절 메뉴이기도 하고, 열무김치를 매우 잘 담그는 아주머니를 안다고 했다. 나는 멸치국수와 포가 사랑하는 만두도 꼭 메뉴에 넣고 싶었다. 김 씨는 딱 하나만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그래서 메뉴는 세 가지로 결정되었다. 멸치국수, 열무국수, 고기만두. 메뉴에 맞는 간판명도 함께 고민했다. 우리는 이렇듯 둘이 힘을 합쳐 행복을 더하자는 의미를 담아 ‘행복한 국숫집’으로 정했다. 


  모든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월세는 김 씨의 노력에도 석 달간 임대료 50% 인하가 최선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임대보증금이 총투자금의 40% 가까이 되었기에 그 부분을 김 씨가 부담하기로 했다. 그것 말고는 김 씨가 말한 대로 착착 흘러갔다. 그 정도면 밥상은 김 씨가 차리고 나는 숟가락만 얹는 셈이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인테리어는 오롯이 김 씨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나보다는 김 씨의 감각이 나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기에 처음 견적보다 추가되는 비용이 생겨도 개의치 않았다.


  개업식 날, 김 씨와 나는 잘 삶아진 돼지의 입에 지폐를 꽂은 뒤 함께 절을 올렸다. 얼굴을 마주 보며 파이팅도 외쳤다. 연구소 사람들, 그리고 김 씨와 함께 일하는 회사 직원들이 찾아와 나의 새 출발을 축복해 주었다. 후덕한 인상의 아주머니 둘은 부지런히 국수를 만들고 만두를 빚었다. 거기에 김 씨가 직접 사 온 열무김치 맛도 아주 일품이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좁은 나만의 세상에 꽁꽁 쭈그리고 있던 내가 김 씨라는 따뜻한 인연을 만나 활짝 펼쳐지는 것 같았다. 개업하고 나서 며칠간은 입 다물 틈도 없을 만큼 많이 웃었다. 볼 근육이 뻐근할 정도였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런 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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