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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28. 2024

소설_우롱차의 기습6화(완결)

  나는 정성을 다해 열무국수를 말았다. 심호흡을 한 뒤 둘을 다시금 국숫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울어서 그런지 그의 아내는 조금 진정된 듯 보였다. 우리 셋은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결국 국숫집을 당장 접고, 그 자리에서 장사할 사람을 어떻게든 김 씨가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혹시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경우, 남은 임대 기간의 월세와 원상 복구 비용은 어찌하면 될지 물었다. 김 씨의 아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냉큼 입을 열었다. “강 박사님은 어차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냥 여기서 손 떼세요. 대신 남아있는 임대보증금은 일단 우리 남편이 관리할게요. 사실 그러면 뭐 하나요, 장사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마저도 다 없어질 텐데. 아니, 오히려 부족하겠네요. 우리 남편은 너무 착해서 탈이에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 어딘가에 일 하나를 처리했다는 안도감이랄까 기쁨의 홍조 같은 게 느껴진 것은 내가 순수하지 않아서일까. 나는 그때 김 씨 부부가 그 자리에서 직접 장사를 하리라 짐작했다. 무엇보다도 김 씨의 아내가 그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열무국수를 먹던 그녀가 혼잣말하듯 역시 내 열무는 최고야. 처음부터 열무국수 전문으로 하라 했건만, 했던 것이다.


  문득 그 아주머니는 열무김치를 참 잘 담그긴 하는데 꼭 현금만 받는단 말이야, 하고 불평하듯 말하며 김칫값을 받아 가던 김 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 하는 소리를 길게 냈다. 테이블 밑으로 김 씨의 발이 슬쩍 김 씨 아내의 발을 밟았다. 흠칫 놀란 그녀는 열무국수가 참 시원하다며 얼른 말을 돌렸다. 멋쩍은지 나를 향해 웃기까지 했다. 내가 그녀의 해죽이는 눈 모양이 건물 주인의 눈매와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김 씨 부부가 거기에서 사업을 한다면, 그들은 추가적인 시설 투자금 없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터였다. 그들이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일지 궁금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럴 계획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계약 당시에 건물 주인에게 임대 보증금을 제대로 내긴 했는지, 그것도 의심쩍었다. 나는 김장 때 수챗구멍에 버려진 배추 겉껍데기가 된 기분이었다. 


  사실 한 달쯤 전, 나는 같은 연구팀에서 일하던 박 대리로부터 김 씨에 대해 들은 말이 있었다.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온 그는 우리 국숫집의 인테리어를 맡았던 업체와 국숫집에서 거래하고 있는 식재료 도매상을 김 씨의 가족이 운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들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대답하는 박 대리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며칠 전 김 팀장 회사의 영업사원들이 연구소 뒤편 흡연 구역에서 그들끼리 수군대는 말을 우연히 엿들었어요. 게다가 김 팀장이 그 자리에서 식당을 하라고 꼬드긴 사람이 여럿이래요. 순진한 강 박사님이 걸려든 거고요. 아무래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직도 그 말 듣던 순간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그는 실험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나에게 혼난 적이 많았다. 그러니까 괜히 나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점잖게 박 대리를 달랬다. 김 씨가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박 대리는 나지막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같이 일할 때, 강 박사님의 큰 목소리가 위압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떠나신 다음 돌이켜 보니까 박사님 같은 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박사님 사업이 잘되길 바라는데, 찜찜한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었어요. 박사님이 사람 잘 믿는 분이란 걸 아니까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다 전화했습니다. 제가 들은 말이 거짓이었길 바랍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한참을 망연히 앉아있었다. 그러다 심호흡을 한 뒤 서랍을 열어 인테리어업체에서 받은 영수증을 찾았다. 대표자 이름은 김민재, 항상 모자와 선글라스, 거기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기에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젊은 청년인 것은 분명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마트의 영수증 뭉치도 꺼냈다. 대표자는 심찬우, 가만히 내 기억을 뒤적여보았다. 심 사장은 자기 아내에게 민아야, 하고 부르곤 했다. 그렇다면 혹시 김민아? 김민아, 김민재. 남매의 이름이라 봐도 무리가 없을 듯했다. 심지어 김 씨는 아내의 전화번호를 ‘아재 엄마’라는 이름으로 저장해 두었다. 나는 아이 이름을 아재로 짓다니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건 아이들 이름 끝 글자를 붙인 것일지도 몰랐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영수증을 쥔 손이 떨렸다. 


  임대계약서를 쓸 적에 만났던 건물 주인도 떠올려보았다. 김 씨는 지인이라서 부동산중개업소를 거칠 필요가 없기에 중개 수수료도 아끼는 거라 강조했다. 계약서를 쓰러 주인집을 찾아갔을 때 주인은 흙 묻은 손을 수도에 황급히 씻고는 대문을 열어주었다. 주인은 백발의 정정한 할머니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며 둘러본 마당 옆 텃밭은 꽤 넓었다. 수돗가에는 방금 뽑은 듯 보이는 파와 열무가 무더기로 쌓였고 그 옆에는 붉은 고추가 소쿠리 가득 담겨 있었다. 농사를 참 잘 지으시나 봅니다, 하고 말하는 내게 주인은 웃으며 답했다. 텃밭에 채소 가꾸는 재미로 산다고. 주인의 눈가 주름이 부채꼴로 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박 대리의 말을 잊으려고 애썼었다. 그들이 김 씨의 가족이라면 김 씨는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했을 거였다. 그러나 그 뒤로 김 씨를 만날 때면 예전과는 다른 감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가 한 말 중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는지 궁금했다. 박 대리가 전해준 말이, 그리고 내가 미루어 짐작하는 가족관계가 사실이라면 나에게 거짓말을 했던 이유가 빤하지 않나 싶어 속이 뒤틀렸다. 그렇다고 김 씨에게 진위를 따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와 함께하며 즐거웠던 기억을 되새기면 더욱 그랬다. 나는 박 대리의 말을 들은 뒤로 내내 불면증에 시달렸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곤 했다.      




  어쨌든 국숫집은 이제 내 손을 떠났다.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섭섭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김 씨가 나를 못된 마음으로 속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할 말은 없었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제대로 달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멸치국수 맛을 일정하게 내는 데 실패했다. 처음 만들었을 때 기가 막힌 맛이 나왔던 건 그저 우연일 뿐이었다. 그러니 김 씨의 말대로 열무국수 전문점을 했다면 국숫집이 잘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김 씨 부부가 그토록 뻔뻔하게 나를 몰아붙이지는 못했을 거였다. 


  어딘가 허전한 내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주방으로 걸어가 우롱차가 담긴 나무 상자를 찾았다.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천천히 뚜껑을 열고 차 봉지를 벌렸다. 차는 얼마 남아있지도 않았다. 남은 찻잎을 모조리 잔에 쏟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찻잎이 꾸물꾸물 부풀고 누르스름한 빛깔이 서서히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문득 김 씨에게서 차를 받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는 무이암차라는 최고급 우롱차라며 공손한 자세로 내게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엉뚱하게도 무이암차가 ‘무임승차’처럼 느껴지는 거였다. 난데없이 우롱차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롱하다’의 우롱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게다가 펼쳐지고 있는 찻잎이 느닷없이 시래기처럼 보이는 것도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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