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러웠다. 나는 환한 조명 아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누워있었다. 실오라기라도 걸치면 더욱 식욕이 돌기 때문일까. 내 몸 위에는 검은색 물방울무늬 조각들만 띄엄띄엄 올라와 있었다. 뭐라도 입혀주면 좋을 텐데 그들은 옷마저 숨겼다. 구멍 뚫린 옷을 입혀서 내어놓느니 벌거벗긴 게 나을 거라 여겼는지도 몰랐다. 나의 하얗게 빛나는 속살은 건강한 윤기를 뽐낼 뿐 아니라 누구나 혀를 놀려 흡입해 버리고 싶을 향을 풍기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했다.
나의 고운 속살은, 아니 원래는 안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겉으로 드러난 살결은 내가 귀한 대접을 받아서 생긴 게 결코 아니었다. 세신과 마사지를 받기야 했지만, 그보다는 뼈를 깎는 담금질과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통해 완성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나의 몸속은 칼자국투성이였다. 화기에 닿은 화상과 불규칙하게 찢긴 열상, 각종 절상과 자상도 가득했다. 그래도 나는 참아냈다. 가끔 눈물이 툭 터지거나 움찔하긴 했지만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그들이 상처 부위에 소금을 뿌리거나 쥐어짤 때도 한층 웅크리기만 했다.
상처와 상처 사이에 오랜 휴식을 주지도 않았다. 잠시 숨을 돌리자면 날카로운 그것이 내 몸 깊숙이 파고들었다. 톱질이라도 하듯 여러 차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나는 난도질을 당하는 기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무수한 상처는 내가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일러주기라도 하려는 듯 쉼 없이 이어졌다. 분명한 것은 아픔과 인내 없이 나라는 존재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제나 고객의 눈길과 입맛을 당길 수 있게끔 단장하고 그들의 요구에 응해야 했다. 나 말고도 주변엔 매력적인 선택지가 넘쳤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온갖 상처에도 둥글고 납작하게 살아왔다.
옷을 두르거나 숨기는 정도에서 벗어나 몸을 날씬하게 혹은 통통하게 조절했다. 발가벗은 몸을 그대로 드러낼 때도 있었으며 맨몸 위에 영롱하고 둥근 구슬을 올리거나 까맣거나 갈색인 물방울 모양 조각을 올리기도 했다. 걸쭉한 액체를 뒤집어쓰고 누워있을 땐 그야말로 찝찝했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저 참아냈다. 그뿐 아니었다. 속을 다양하게 바꾸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중독적인 감각을 위한 다양한 변주도 필요했다. 속이 보일 듯 말 듯 비스듬히 눕기도, 훤히 드러나게 눕기도 했다. 그렇게 단련된 나는 사랑을 받았다. 내 앞으로 고객이 찾아오기도 했고 내가 고객을 찾아가기도 했다.
조금 전 나를 가로지른 상처에 터질 듯한 아픔이 느껴지는 찰나, 언젠가 들어본 멜로디가 들렸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였다. 문득 벌거벗은 나는 거추장스러운 옷 따위 걸치지 않고 춤을 추는 젊은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보호막이 없어 상처 입기 쉬운 상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꿈결 같은 리듬을 듣고 있자니 아련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숲속, 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눈을 감는 내가 있는 풍경이었다. 상처를 감싸안고 살아온 시간이 기특했다고, 곧 다가올 깊은 어둠과 온몸이 촉촉하게 으스러지는 순간에도 용감하겠다고 다짐하는 나. 그런 정경을 떠올리니 지금 하얀 시트 위에 누워 차가운 조명을 받고 있을지라도 행복했다.
공기를 뚫고 맛있겠다는 감탄이 들려왔다. 이제 길쭉한 두 다리가 다가와 나를 안아가겠지. 이어 우악스러운 입술에 감기고 날카로운 상아색 칼날을 맞닥뜨리겠지. 터질 옆구리조차 없는 나, 살 빼려는 자들은 쳐다보기도 싫을 나, 한때는 파격이었던 나.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누드김밥.
* 프랑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에릭 사티가 작곡한 피아노곡. 짐노페디는 영어 짐노페디아(Gymnopaedia)의 프랑스식 표기. gymnos는 고대 그리스어로 ‘알몸의’를 뜻하며 paedia는 ‘청춘, 젊은이’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