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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06. 2024

소설_엉덩이의 교집합 1화

  기상 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누운 채 알람을 끄고 팔과 다리를 쭉 뻗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다리를 골반 넓이로 벌리고 무릎을 세운 뒤 꼬리뼈, 허리뼈, 척추뼈 순서로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속으로 셋을 천천히 센 다음 골반을 내렸다. 그렇게 이십 회를 반복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내려와 반듯하게 섰다. 엉덩이에 힘을 주며 주방으로 갔다. 어느새 당찬이가 따라와 꼬리를 흔들었다. 당찬이 그릇에 물을 채워주고 나도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그러면서 진열장 유리에 비친 나의 옆모습, 특히 엉덩이를 살폈다. 확연히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탄력이 붙는 것 같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며칠 전 업데이트한 영상에도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는 이거였다. 교수님 엉덩이 짱! 몇 번을 반복해 읽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댓글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엉덩이를 양손으로 토닥거리며 창가로 다가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에 흔들리는 나뭇잎에 얹힌 노란 빛을 보며 유난히 길고 힘들었던 지난여름을 잘 버텨냈다고 생각했다. 그건 다름 아닌 지금 내 옆에 있는 당찬이와 엉덩이 덕이었다.      



  약 석 달 전, 내가 강의하던 과목의 1학기 기말고사가 있던 날이었다. 나는 다음 학기에는 강의를 줄 수 없다는 변 교수의 이메일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통보가 믿기지 않아 거듭 읽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했다.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해고 통보.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나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꽉 쥔 주먹만 부르르 떨 뿐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학교로 갔고, 기말고사를 무사히 끝냈다. 학생들의 시험지를 모아 가방에 넣는데 울컥할 뻔한 것만 빼면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혹시 잘못 보낸 거라는 이메일이라도 왔을지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퇴근하는 길,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데 온몸의 기운이 스멀스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한쪽 어깨를 벽에 기대고 비스듬히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방을 짊어진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아무리 짜증이 나더라도 일단은 집에 가자고 나를 다독이며 무겁게 한 발을 떼었다.


  그때였다. 일부러 나에게 들으라는 듯 표독스럽게 내뱉는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복잡스러운 길을 떡 막고 서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누가 나의 성질을 건드리는 건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붙잡고 시비라도 걸어볼까 싶었다. 그 말을 한 것으로 짐작되는 아주머니는 이미 저만치 앞서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내 눈에 아주머니의 펑퍼짐한 엉덩이가 들어왔다. 얇은 바지가 몸에 밀착되어 팬티선과 흐트러진 윤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지 아주머니는 씩씩하게 걸어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갔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실소를 흘렸다. 가서 따지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게 하는 엉덩이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갔다. 샤워부터 하려고 땀에 젖은 옷을 벗다가 가만히 섰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을 찬찬히 살펴봤다.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마흔일곱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봐줄 만한 것 같았다. 아까 그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턱을 살짝 들고 옆으로 섰다. 뭐지? 순간 흠칫 놀랐다. 내 엉덩이의 출렁임이 마치 물을 반쯤 채운 풍선의 흔들림처럼 보였다. 턱을 당긴 채 조심스레 엉덩이에 힘을 줘봤다. 엉덩이 위치가 확연히 달라졌고 옆 엉덩이는 움푹 들어갔다. 다시 힘을 빼자 엉덩이는 맥없이 아래로 처졌다. 안 볼 걸 그랬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목덜미를 주무르다 코웃음을 치며 샤워기 아래로 갔다. 몸에 물을 대강 끼얹고 거울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며 화장실을 나왔다. 옷장 서랍을 열어 넉넉한 고무줄 반바지를 찾아 입고 중얼거렸다. 그깟 살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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