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를 켜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안경을 고쳐 쓰며 모니터가 켜지기를 기다렸다. 다음 학기에 강의할 자리를 서둘러 알아봐야 했다. 시간강사를 채용하는 대학은 많았지만 요즘 들어서는 AI 관련이나 통계학 쪽만 그랬다. 더군다나 그런 분야를 전공한 젊은 박사들은 넘쳐났다. 내가 강의하는 위상수학이나 해석학도 자리가 없는 건 아닌데 최근 들어 어쩐지 쉽지 않았다. 수학 강의가 가능한 대학의 선배 교수들 연락처 엑셀 파일을 열었다. 한 화면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입력된 내용이 많지는 않았지만 한 줄씩 공들여 읽었다. 선뜻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몇 년간 연락을 주고받아온 몇몇 선배에게서는 강의 자리가 없다는 말을 이미 들은 상태였다. 손톱을 깨물며 모니터만 노려보다가 결국은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양쪽 관자놀이를 비비던 나는 고개를 들어 책장을 보았다. 책이 빼곡했다. 대개가 전공 서적과 논문이었지만 한쪽 구석엔 내가 어린 시절 공부했던 공책도 몇 권 있었다. 손을 뻗어 그중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풀이 과정을 자로 댄 듯 반듯하고 야무지게 적은 어린 글씨체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 장씩 천천히 넘기다가 집합의 개념을 정리해 놓은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어쩌면 벤다이어그램도 이토록 예쁘고 균형 잡히게 그렸는지! 문득 작은 동그라미를 품은 큰 동그라미, 그러니까 부분집합에 눈길이 닿았다. 전남편의 전화번호를 ‘나의 부분집합’이라 저장해두었던 일이 떠올랐다. 입 근처를 머물던 미소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고개를 살짝 흔들고 다른 벤다이어그램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는 교집합이 눈에 들어왔다. 희한하게도 두 개의 동그라미를 살짝 겹친 모양이 예쁘장한 엉덩이처럼 보였다. 내 엉덩이는 공집합을 표시하는 기호(∅) 언저리일 것 같았다. 지하철 계단에서 본 아주머니의 것은 공집합 기호에도 못 미쳤다.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느닷없이 황당한 생각이 줄줄 떠오르는 걸 봐서 아무래도 내가 더위를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노트를 다시 책장에 꽂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액정에 반려견 교육 기관 번호가 보였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데 전화가 끊겼다.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한숨이 나왔다. 잠시 뒤 문자가 도착했고, 내용은 예상한 대로였다. 내가 키우는 개, 당찬이의 교육이 마무리되었다며 토요일에 데리러 오라 했다. 무슨 교육이 이리도 빨리 끝나는가 싶어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나는 지난겨울, 태어난 지 삼 개월 된 당찬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건 순전히 내가 강의를 맡고 있던 H 대학의 주임교수인 변 교수로 인한 거였다. 그는 저먼 셰퍼드를 키우고 있었는데 입만 열면 자기 반려견이 똘똘하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뭘 키우는 데 별 흥미가 없었지만 변 교수와 더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 같은 견종을 키우기 시작했다. 변 교수는 반려견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나에게 반려견 교육 기관을 추천했었다.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짜증이 치밀었다. 나는 휴대폰을 소파 위로 던지며 중얼거렸다. 변 교수, 이 나쁜 자식. 어떻게 나한테 느닷없이 강의 못 준다고 통보를 해? 개똥이나 푸짐하게 밟아라! 그것도 매일 매일!
어쨌든 교육 기관에서 다시 만난 당찬이는 꽤 의젓했다. 변 교수를 생각하면 더는 키우고 싶지도 않았지만 훈련사가 나에게 줄을 넘겨주자마자 나를 잘 따르는 모습에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나는 교육 효과를 확인할 겸 당찬이와 산책하러 나갔다. 건널목에 서 있는데 사람들의 흘끗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역시 저먼 셰퍼드는 데리고 다니면 폼이 났다. 곧이어 신호등이 파랗게 변하고 주변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하자 당찬이가 잽싸게 뛰어나갔다. 나는 갑자기 불쾌해졌다. 제자리에 선 채 가만히 목줄을 잡아당겼다.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당찬이가 나에게 돌아왔다. 줄을 느슨하게 하자 당찬이는 또 빠르게 전진했다. 나는 다시금 줄을 팽팽히 당겼다. 당찬이는 그제야 내가 걷기 시작할 때를 기다리다 내 속도에 맞춰 움직였다. 지나가던 꼬마는 당찬이의 그런 모습에 똑똑하다며 감탄했고, 그 소리에 내 어깨는 절로 펴졌다.
그날 산책길에 남의 엉덩이로 눈길을 보내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반려견에 끌리듯 지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된 거였다. 구겨진 티셔츠 아래 유난히 커다란 엉덩이가 허둥대는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저 사람은 집에서도 저렇게 개에게 쩔쩔매겠구나, 싶어 딱하기도 했다. 그때 레깅스를 입은 한 아저씨가 내 옆을 빠르게 뛰어 지나갔다. 씰룩이는 엉덩이의 모양이 선명했다. 어쩐지 앞섶도 그러할 것 같았다. 깜빡하고 반바지를 덧입지 않아서 숨이 차도 멈추지 못하는 상황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풋, 하는 소리가 입가로 새어 나왔다. 웃음을 참느라 입술에 힘을 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하나둘씩 산책하는 사람들의 엉덩이 쪽으로 눈길이 갔다. 이어 그들의 상황을 짐작해 보기 시작했다. 급하게 움직이는 엉덩이를 보면 화장실을 찾고 있는 걸까, 하고. 어색하게 움찔거리는 엉덩이를 보면 어디 불편하게 속옷이 말렸나, 하고. 엉거주춤하는 엉덩이를 보면 엉덩이에 종기라도 난 건가, 하고. 그날 산책은 남의 엉덩이 사정을 상상하는 놀이로 내내 즐거웠다.
나는 그 뒤로 남의 엉덩이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계단에서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러 엉덩이를 관찰할 수 있어 좋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계단 옆에 에스컬레이터가 나란히 설치된 지하철의 통로는 최고였다. 에스컬레이터에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가만히 고개를 들면 멈춰있는 엉덩이가 눈높이에 있었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층계를 올라가는 엉덩이를 볼 수 있었다. 두텁고 긴 외투를 입는 겨울에는 어림도 없을 터라서 이게 바로 여름의 장점이로구나, 하는 얼빠진 생각도 했다. 나는 그렇게 다양한 색깔과 재질의 옷 아래 숨겨진 엉덩이의 형태라든가, 꿈틀대는 움직임을 흘리듯 보았다. 열심히 쳐다보았다가는 뺨을 맞을 수도 있기에 무심한 척 재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