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08. 2024

소설_엉덩이의 교집합 4화

  문득 전남편이 마음이 잘 통하는 여자를 만났다며 이혼해 달라던 밤이 생각났다. 나는 그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그의 난데없는 고백과 요구에 얼떨떨했었다. 혹시 나를 떠보려는 건가, 이런 식의 장난은 상당히 곤란한데, 하고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톡톡 두드렸다. 내 표정을 살피던 그는 우리가 함께 살던 집과 넉넉한 위자료를 주겠노라 했다. 나는 그제야 농담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 입에서는 비아냥 섞인 질문이 나갔다. “넉넉한 위자료가 도대체 얼만데?”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잠깐 나를 쳐다보았다. 이어 종이에 적은 액수는 우리의 현금자산 절반쯤이었다. 집까지 더하면 꽤 많은 재산을 내게 넘기는 셈이었다. 이 정도면 군소리 없이 놓아주겠지, 그런 계산인 것 같았다. 나와 더는 어떤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느껴져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솟구쳐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딱딱한 어조로 천천히 말했다. “내 앞에서 당장 꺼져버려!”


  그즈음 나는 전임 교수직 물망에 오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에게서 마음이 멀어진 남편쯤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도 했다. 남편은 너는 나랑 결혼을 왜 한 거니, 당신 이런 사람일 줄은 미처 몰랐어, 대화를 좀 하자, 이런 말을 자주 입에 올렸었다. 나를 이해하고 싶지만 내가 말을 안 하니까 어렵다고 하소연한 적도 있었다. 나는 그런 대화가 불편하고 싫었다.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걸 표현하는 게 어렵고 두렵기만 했다. 왜 그런지는 알지 못했지만 깊이 따져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튼 그가 아니라도 내가 전임만 된다면 옆에 있어 줄 사람은 차고 넘칠 거라 믿었다. 결국은 전임 자리가 무산되었지만. 


  나는 가끔 전남편의 현재 결혼생활은 어떨지 궁금했다. 부부가 같은 책을 읽는다든가, 함께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텔레비전을 보며 같이 웃는 모습을 상상하면 부쩍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나까지 안정된 자리를 잡은 뒤 아기를 갖겠다며 임신을 미뤘던 게 후회되기도 했다. 그는 책임감이 강한 남자였으니까 아이가 있었다면 어지간해서는 나를 떠나지 못했을 거였다. 그랬는데 시선을 사로잡는 젊은 여자애의 엉덩이에다 혜인의 엉덩이까지 더해지자 이상하게 심기가 불편해졌다. 마음은 개뿔, 전남편도 여자의 엉덩이에 매혹된 건 아니었을까, 하고. 나도 모르게 한쪽 입술이 위로 올라갔다. 그가 앞에 있다면, 고상한 척은 혼자 다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지? 하며 한껏 비아냥거리고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알 바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유독 사람들 엉덩이만 눈에 들어왔다. 이제 사연이나 떠올리는 수준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평가하고 있었다. 집요하게 관찰하느라 보행신호가 빨간 불로 바뀐 줄도 모르고 횡단보도를 건널 뻔하기도 했다. 아무튼 납작한 엉덩이에 비해 볼록한 엉덩이를 가진 사람들은 걸음걸이도 활기찬 경향을 보였다. 아무래도 탄력 있는 엉덩이는 젊음뿐 아니라 사랑과 성공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엉덩이가 요망한 아가씨가 남자친구와 웃던 모습과 나이에 걸맞지 않는 엉덩이를 가진 혜인의 성공적인 커리어가 떠오르자 더욱 확신이 생겼다. 문득 전남편의 아내 엉덩이는 어떻게 생겼을지 자못 궁금했다. 나보다 어리니까 아무리 못해도 나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짜증인지 질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마구 끓어올랐다. 괜히 억울한 마음에 속으로 외쳤다. 나도, 나도 한때는 잘나갔어.


  곧이어 이런 오기가 났다. 그까짓 엉덩이 세우고 말리라, 그래서 청바지를 멋지게 입고 거리를 활보하리라. 숱한 강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젊고 활기차 보여야 한다는 당위성까지 엄연하게 떠올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당장에 노트북을 켜고 혜인이 말했던 힙업 운동을 찾아보았다. 엄청나게 많은 글과 동영상이 쏟아졌다. 내가 주변 사람들보다 뒤처지게 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들이 자기 엉덩이에 투자하는 동안 나는 그저 깔고 뭉갰다는 자괴감도 잠시, 내 엉덩이 모양이 공집합 기호 정도는 된다는 게 떠올랐다. 나는 풀어야 할 문제를 끌어안으면 몇 시간이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스타일인 데다가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평범하다면, 타고난 엉덩이는 비교적 훌륭했을 가능성이 컸다. 상수는 골반 크기인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변수는 노력! 이제라도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여러 유튜버가 올린 봉긋한 엉덩이 만드는 방법을 밤이 늦는 줄도 모르고 봤다. 복숭아처럼 아름다운 엉덩이가 너무나 많았다. 그들에 비하면 혜인의 것은 예쁜 축에 끼지도 못했다. 내가 운동만 하면 혜인보다 멋진 엉덩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입꼬리도 올라갔다. 얼른 엉덩이를 세우고 혜인 앞에 뽐내며 서고 싶었다. 그게 과연 언제쯤이 될지 궁금했다. 운동 시간에 따른 엉덩이의 둘레라든가 탄력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러니까 엉덩이의 미래를 예측하는 함수식을 발표하면 전임 교수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흔한 말로 엉덩이와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거였다. 나는 좋은 방법까지 단박에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일단 메모지에 적었다. 

  - 위상수학적 관점에서, 사람의 엉덩이는 복숭아와 다를 바 없다. 엉덩이를 복숭아 모양으로 다듬으려면 피부 안쪽을 근육으로 채워 부피와 밀도를 늘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정확한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엉덩이는 탱탱볼을 반으로 잘라 나란히 붙여놓은 것과 다르고, 뼈에는 크고 작은 근육과 지방이 들러붙어 있었다. 여러 기관과도 연결되어 있으니 몸에서 엉덩이 부분만 떼어놓고 생각한다는 것 역시 우스웠다. 그러나 나의 머리에는 구의 부피 공식이 지나갔으며 반구 모양의 얇은 막이 안쪽부터 양쪽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즉, 콩 껍질처럼 미약하고 작은 근육막에서 시작해 점점 반구를 감싸 내부가 꽉 차면 엉덩이가 빵그랗게 될 거였다. 덜 차면 지금의 내 엉덩이처럼 근육이 붙잡아주지 못하는 살덩이가 중력 방향으로 처지고. 엉덩이에 근육이 붙는 문제가 단순한 적분으로 해결되진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오차범위를 줄이는 방법이야 천천히 생각하면 되었고 엉덩이는 키우면 되었다. 당장 온라인쇼핑몰로 들어가 날씬한 연예인들이 입는다는 청바지부터 샀다.


  그다음 날, 나는 줄자로 엉덩이둘레를 잰 뒤 준비운동부터 시작했다. 양손을 깍지 끼고 쭉 늘리는데 벌써 온몸의 근육이 부풀 준비를 하는 듯했다. 흐뭇하게 전날 밤의 아이디어를 떠올리자니 엉덩이둘레의 운동 시간별 증가함수는 S자형일지, 선형일지 아니면 계단형일지 궁금했다. 불현듯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운동의 종류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별과 나이, 식단이나 유전적 특성에 따라서도 다를 거였다. 게다가 필수요소라 예상되는 걸 추려낸 다음 대조군과 실험군으로 나눠 엉덩이 성장곡선을 만든다 해도 내 실험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여럿 필요할 터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탄력 저하라는 변수도 떠올랐다. 한숨이 나왔다. 자신감이 사라지자 내 엉덩이가 원래는 훌륭했으리라는, 그래서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예쁘고 둥근 모양이 될 거라는 근거 빈약한 오만을 비웃고 싶었다. 아무래도 전날 밤엔 혜인과 지영을 만나며 받은 스트레스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틀림없었다.


  이마를 긁적이며 멍하니 서 있다가 똑바로 섰다. 논문 욕심은 차치하고라도 탐스러운 엉덩이는 꼭 갖고 싶었다. 그래야 사랑과 성공이 나에게도 붙을 것만 같았다. 나는 많은 유튜버의 운동법을 믿어보기로 했다. 마침 청바지도 일찌감치 배송되었다. 그걸 거울 옆에 걸어놓고 열심히 스쾃, 힙 브릿지, 힙 스러스트를 했다. 하지 않던 운동을 해서 그런지 식욕이 당기고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이러다가는 근육이 아니라 체중만 늘 것 같아 걱정되기도 했다. 더구나 다리는 깊은 물 속을 걷는 듯 무거웠고 무릎이 시큰거려 괜히 관절만 상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내 마음에는 과연 엉덩이에 진짜로 예쁜 근육이 붙을지에 대한 의심만 한 겹 한 겹 들러붙고 있었다.

이전 16화 소설_엉덩이의 교집합 3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