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연희 Oct 30. 2023

7-3. 모세_출애굽의 지도자

: 이집트를 떠나 시나이산까지


하느님의 명대로 모세는 형 아론과 파라오를 찾아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애굽)를 떠나 하느님께 예배하게 해달라고 청한다. 파라오는 완강히 거부하며 이스라엘 노예들을 더 괴롭혔고 이에 그들의 불평이 커져가자 모세는 하느님께 간곡히 기도한다. 다시 파라오에게 나아간 모세와 아론은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지만 파라오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에 하느님은 이집트에 차례차례 재앙을 일으킨다. 풍요의 근원인 물이 피가 되고, 개구리 떼가 몰려들고, 모기와 등에가 들끓고, 가축병으로 동물이 죽어가고, 고통스러운 종기가 인간과 짐승을 괴롭혔다. 이어 우박이 억수로 퍼붓고, 메뚜기떼가 온 땅을 덮었다가 어둠이 사흘 동안 지속되었다. 무시무시한 재앙들은 그것을 상징하거나 주관하는 이집트 신들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하느님의 더 큰 권능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파라오는 거짓 약속으로 재앙이 물러가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지 않았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열 번째 재앙>, 1802년, 캔버스에 유채, 143 x 236cm, 테이트, 런던


재앙의 이야기는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작품처럼 간혹 풍경 속에 암시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밤이 지나고 해가 서서히 떠오르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하나둘 드러난다. 자세히 보면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충격과 슬픔으로 괴로워한다. 멀리 선 어머니들의 곡성이 들리는 듯하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가 죽은 것이다. 전경에 짙게 드리워진 어둠과 음산한 하늘은 재앙의 비극을 강조한다. 신으로 여겨진 파라오의 아들마저 목숨이 끊어지자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한 파스카 제사이다. 그분께서는 이집트인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시어, 우리 집들을 구해 주셨다.”(탈 12, 23)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하느님의 어린양>, 1635-40년, 캔버스에 유채, 38 x 62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그렇다면 이스라엘인들은 어떻게 이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까.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이를 예비하는 파스카(유월절) 의식을 알려주셨다(탈 12장).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면, 그 표식이 있는 곳은 재앙이 거르고 지나갔던 것이다. 이날 이스라엘 백성은 집에서 불에 구운 고기를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과 함께 먹되,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했다(탈 12, 8, 11). 이스라엘 민족은 이렇게 파스카 축제를 지내며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한 날을 기억한다. 이때 희생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살린 파스카 양은 이후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은 예수를 상징하게 된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án, 1598~1664)이 그린 묶인 양의 초상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 1, 29) 예수의 초상인 셈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집트 종살이는 430년 만에 해방을 맞게 되었다(탈 12, 40).



윌리엄 웨스트, <밤에 불기둥의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인들>, 1845년경, 66.7 x 101cm, 노팅엄 시립 미술관


출애굽 이후 시나이산에 도착하기까지 하느님은 그 여정에 항상 동행하셨다.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장정만 육십만으로(탈 12, 37) 대략 이백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추정된다. 하느님은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탈 13, 21). 영국의 풍경화가 윌리엄 웨스트(Willam West, 1793~1861)의 작품은 신비로운 밤의 장면을 보여준다. 저 멀리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웠지만 하늘에서 땅까지 이르는 불기둥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광야를 훤히 비춘다. 근처 바위 언덕에는 설교하는 모세와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먼지 같은 인간들과 대조되는 거대한 돌산과 바위들, 해와 달도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인 광휘를 발하는 불기둥은 신의 위엄과 권능을 드러낸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탈 13, 22)



루카스 크라나흐, <홍해를 건너다>, 1530년, 패널에 유채, 83.2 x 118.8cm


하느님은 갈대 바다(홍해)를 건너 시나이 반도로 들어가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다. 뒤늦게 마음을 바꾼 파라오는 군사와 병거를 이끌고 이들을 뒤쫓는다. 앞쪽엔 바다가, 뒤쪽엔 이집트 군대의 추격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모세에게 불평을 쏟아낸다. 이제 만화 영화 <이집트 왕자>의 그 유명한 장면이 시작된다. 하느님의 지시대로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른다. 밤새도록 거센 바람이 바닷물을 밀어내 좌우의 벽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땅을 걸어 바다를 건너갔다.  


화가들은 이 기적의 광경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이집트 군대가 몰살하는 장면을 더 즐겨 그렸다.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의 그림에서 말과 병거를 이끌고 갑옷에 투구까지 한 이집트 군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물속에서 발버둥 친다. 새벽녘에 하느님은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트렸고, 모세가 다시 바다 위로 손을 뻗자 바닷물이 제자리로 돌아와 파라오의 군대를 덮친 것이다. 해안가를 둘러싼 구름벽은 그들이 빠져나갈 길을 막고 있다. 바다를 무사히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이 행하신 일을 경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니콜라 푸생, <홍해를 건너다>, 1632-4년, 155.6 x 225.3cm/ 앙리 프레데릭 쇼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자손들>, 1855년경, 57 x 95cm


비교를 위해 올린 두 작품은 이집트 군대의 몰살보다 무사히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두었다. 자세히 보면 기적이자 재앙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이 흥미롭다. 그 광경을 넋을 놓고 보는 사람, 하느님의 행하신 일을 찬양하거나 감사하는 사람, 가족과 물건을 돌보는 사람, 물가에서 쓸만한 물건을 챙기는 사람들까지, 연약한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주님께 노래하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 이분은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찬미하리라.
내 아버지의 하느님, 나 그분을 높이 기리리라.”(탈 15, 1-2)



틴토레토, <만나 모으기>, 1577년경, 캔버스에 유채, 550 x 520cm,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로코, 베네치아


홍해를 건너 시나이산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이 돌보시는 기적을 여러 차례 경험한다. 물 없는 광야를 사흘간 걷다가 마라에서 모세가 쓴 물을 단물로 바꿔 갈증을 해결한다. 광야에서 굶어 죽을까 두려워하며 사람들이 불평을 터트리자 하느님은 저녁에 메추라기 떼를, 아침에는 만나를 보내주신다. 서리처럼 광야에 깔린 만나는 하얗고 꿀 섞은 과자 같았다(탈 16, 31). 하느님의 지시대로 식구수대로 먹을 만큼 하루치만 수확해야 했고 욕심을 부려 저장하면 구더기가 들끓었다. 만나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양식이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을 배고픔에서 구한 신성한 음식 만나는 구원자 예수의 몸인 성체(the Host)를 예시한다.  


많은 화가들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장면을 다루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틴토레토(Tintoretto)의 거대한 천정화다. 배고픔에 사람들이 불평하자 구름 사이로 광휘를 발하며 하느님과 천사들이 나타나 만나를 흩뿌린다. 왼쪽에 등을 돌린 모세가 팔을 뻗으며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탈 16, 15)라 말하는 듯하다. 광야에서 쉬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눈처럼 내리는 만나를 받으려고 바구니를 들어 올린다. 가로 세로 5m가 넘는 이 천정화는 아래서 본 시점으로 묘사된 데다가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 속에서 사람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보는 이를 기적의 현장에 서게 한다.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로코 정면과 실내, 1515-60년 건축, 베네치아


베네치아의 화가 자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 1518~1594)는 염색공 아버지를 따라 작은 염색공을 뜻하는 틴토레토(Tintoretto)로 불렸다. 그는 위의 작품처럼 특이한 시점과 역동적인 구성, 거친 마무리, 극적인 명암대조를 특징으로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신비로운 작품세계를 펼쳤다. 


<만나 모으기>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로코(Scuola Grande di San Rocco)의 제단 쪽을 장식한 천장화다. 베네치아 특유의 ‘스쿠올라’는 평신도들의 자선 단체로 역병이 자주 출몰했던 이 섬의 병자와 빈민을 도왔다. 1478년 베네치아를 휩쓴 역병으로 창설된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로코는 전염병을 치유하는 성 로코를 수호성인을 삼았고, 내부 장식을 위한 공모전(1564)에서 작업 속도가 빨랐던 틴토레토가 스케치가 아닌 완성작을 제출하며 당선되었다. 틴토레토는 25년여에 걸쳐(1564∼1587) 신구약의 이야기를 담은 대형 유화 60여 점으로 이곳을 장식했다. 베네치아의 특징적인 화려하고 귀족적인 그림들과 사뭇 다른 거칠고 서민적인 틴토레토의 그림은 그의 후원자인 중산층, 특히 신앙심 깊고 보수적인 평민들이 속한 스쿠올라 계층의 취향을 대변하기도 한다.  


최근에 조명이 세심하게 조정되어 내부 공간과 틴토레토의 그림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6BrrOsAZXeQ




야코프 요르단스, <바위를 쳐 물이 솟아나게 하는 모세>, 1645-60년, 캔버스에 유채, 129.5 x 269.2cm, 게티 센터, LA


물이 없는 광야를 걷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불평을 늘어놓는다. 플랑드르(현 벨기에 지역)의 화가 야코프 요르단스(Jacob Jordaens, 1593~1678)의 작품은 물이 솟아나는 기적을 보여준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모세가 호렙의 바위를 지팡이로 치자 물이 터져 나왔다. 갈증으로 괴로워하던 사람들은 물론 가축과 강아지도 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좌우로 긴 캔버스에 젖을 먹이는 창백한 얼굴의 엄마에서부터 쓰러질듯한 노인, 힘없는 아기들과 건장한 남자들까지, 항아리를 들고 물로 향하는 이들의 몸짓은 몹시 절박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돌보심을 의심하며 다시 주님을 원망하고 시험했던 것이다.   



토마스 브리그스톡, <모세의 팔을 붙잡고 있는 아론과 후르>, 1840-60년, 캔버스에 유채, 260 x 368cm


르피딤에서는 아멜렉족이 몰려와 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였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지시해 장정들을 데리고 나가 싸우게 했고, 자신은 하느님의 지팡이를 들고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다. 토마스 브리그스톡(Thomas Brigstocke, 1809~1881)의 작품은 이때 모세가 행한 것을 묘사한다. 저 아래에선 아멜렉과 이스라엘의 전투가 한창이고, 모세와 아론과 후르(훌)는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 흥미롭게도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하게 되었다. 결국 아론과 후르는 그림처럼 모세의 발아래 돌을 가져다 놓고 양쪽에서 그의 두 손을 받쳐주었다. 모세의 힘겨운 얼굴과 그를 상징하는 머리에서 솟아난 빛, 손에 든 하느님의 지팡이, 휘날리는 붉은 옷자락은 승리를 위한 모세의 노력과 에너지를 전달한다. 해가 질 때까지 모세의 손은 내려오지 않았고, 결국 이스라엘은 아멜렉족과 싸워 이겼다.   


존 에버렛 밀레이, 1891년, 캔버스에 유채, 194.7 x 141.3cm, 맨체스터 아트 갤러리


‘나는 주님이다. 나는 이집트의 강제 노동에서 너희를 빼내고, 그 종살이에서 너희를 구해 내겠다. 팔을 뻗어 큰 심판을 내려서 너희를 구원하겠다. 그러고 나서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이집트의 강제 노동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기로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 땅을 너희 차지로 주겠다. 나는 주님이다.’ (탈 6, 6-8)



매거진의 이전글 7-2. 모세_주님을 마주 보고 사귄 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