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연희 Jun 09. 2023

2-1. 카인과 아벨_제사와 살인의 내러티브



니콜라 사리치, <의로운 아벨>, 2015-6년, 종이에 수채, 100 x 70cm


중앙에 두 팔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금빛의 천상으로부터 하느님의 손이 임한다. 양쪽에는 한 사내와 높은 단 위에 어린양이 그를 향해 있다. 두 손으로 막대기를 쥔 사내는 폭력을, 어린양은 희생 제사를 암시한다. 새하얀 차림의 인물들과 어린양, 하얀 꽃들로 장식된 회색 배경에서 어쩐지 희생과 추모의 분위기가 전해진다. 최초의 형제 사이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두 아들을 낳았다. 첫째 카인(가인)은 아버지처럼 땅을 일구는 농부가 되고, 둘째 아벨은 양치기가 되었다. 그래서 카인은 곡식을, 아벨은 양 떼 가운데 가장 좋은 맏배(첫 새끼)를 하느님께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느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만을 기뻐 받으셨다. 이에 화를 참지 못한 카인은 죄를 피하라는 하느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들로 데리고 나가 죽인다. 하느님이 아벨의 행방을 묻자 카인은 모른다고 부인하였고, 결국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도는 저주를 받는다. 하지만 두려움에 떠는 카인이 타지에서 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하느님은 표식을 찍어주는 자비도 베푸신다. 에덴의 동쪽 놋땅에 거주했던 카인의 자손들은 목축업, 음악, 무기로 상징되는 문명의 조상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인류의 역사는 살인으로 시작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폭력과 죄악의 강도도 점차 높아진다. 이후 선과 악의 갈등은 아벨과 카인이 그 기원으로 제시된다.


이미지 출처:

https://www.nikolasaric.de/portfolio/witnesses/?lang=en



<카인과 아벨>, 11세기, 상아부조, 10.9 x 22.1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11세기에 제작된 상아 부조에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마치 만화의 컷처럼 전개된다. 왼쪽에 형제가 준비한 제물을 천 위에 올려 공손히 바치는데, 하느님의 손은 곡식을 든 카인이 아닌 양을 든 아벨에게 향해 있다. 아벨이 바친 어린양은 이후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시(豫示) 한다. 기둥으로 나뉜 다음 장면은 분을 참지 못한 형이 두 손으로 동생의 목을 조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위로 두루마리(말씀)를 손에 쥐고 모습을 드러낸 하느님이 도망치는 카인을 향해 팔을 뻗는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두려운 얼굴에 몸을 움츠린 카인은 손을 저으며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 4, 9)라고 부인한다. 이야기 전달이 목적이었던 중세 미술은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핵심 내용이 단순하고 명료하게 전개된다. 두 손 크기만 한 부조는 마치 그림책처럼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쉽게 전했을 것이다.


도대체 하느님은 왜 카인의 제물을 외면하셨을까? 성경에 그 이유가 제시되지 않아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었다. 그 가운데 카인은 소출의 일부를 바쳤지만 아벨은 가장 좋은 것을 모두, 그리고 반복적으로 드렸다, 그래서 아벨의 제사가 정성스럽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혹은 하느님이 문화적으로 우월했던 농경민(가나안 민족) 보다 목축업을 했던 유목민(이스라엘 민족)을 더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외경에서는 카인이 사탄의 자식이라고 묘사되기도 했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느님께 바쳤다(히 11, 4)고 보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부조리와 역설도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어쩌면 신의 선택은 그의 절대적인 자유이자 인간이 파악하기 어려운 영역이 아닐까.



얀 판 에이크, <헨트 제단화> 열었을 때, 1423년, 패널에 유채, 357 x 520cm, 성 바보 대성당, 벨기에 헨트  
<헨트 제단화>의 세부, <카인과 아벨의 봉헌>, <카인의 살해>


중세와 차원이 다른 세밀한 사실주의 회화의 아버지, 얀 판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헨트 제단화>에도 인류 최초의 살인이 묘사되었다. 당시 헨트의 시장이 성 바보(신트 바프스) 대성당 내에 가족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한 이 거대한 제단화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강탈하기도 했던 벨기에의 국보급 작품이다. 주일과 축일에 펼쳐지는 제단화 상단에는 하느님(혹은 예수)을 중심으로 좌우에 성모와 세례 요한, 천사들의 콘서트가 묘사되었다. 양 가에는 알몸의 아담과 하와가 서 있는데, 나뭇잎과 손으로 성기를 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열매를 먹은 이후 부끄러움을 알게 된 상태이다. 에이크가 그린 최초의 인간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린 완벽한 인간상과는 차이가 있다. 개성적인 얼굴과 현실적인 몸이 세밀하게 묘사된 것으로 보아 화가가 실물을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아담과 하와 위로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단색조인 그리자유(grisaille)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아담 위에는 공손한 자세로 하느님께 양을 바치는 앳된 아벨과 동생을 살피며 곡식 다발을 준비하는 카인이 등장한다. 하와 위에는 카인이 아벨의 목을 조르며 (구약시대의 무기인) 당나귀 턱뼈를 내리치려는 순간이 묘사되었다. 음각의 공간에 놓인 조각처럼 보이지만, 무척이나 괴로워하는 아벨의 절규가 들릴 듯하다. 흥미롭게도 이 살인 장면은 금단의 열매를 한 손에 든 수수한 하와 위에 배치되었다. 원죄의 근원인 하와와 자식의 죄를 연결시킨 것이다. 이렇게 이어진 인류의 죄는 제단화 하단에 많은 사람들과 천사의 경배를 받으며 피 흘리는 어린양(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씻겨진다. 제단화를 접으면 이 화려한 제단화를 주문한 시장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성당 안의 예배당과 이 거대한 제단화를 봉헌하며 그들이 기도했던 것은 물론 사후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몇 년 전에 헨트제단화의 아담과 하와 되기 프로젝트에서 실제 다양한 커플들이 참여해 누드의 아담과 하와로 제단화에 등장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라면 절대 불가능할 이 프로젝트는 여러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PL8ThzVDjeQ




귀스타브 도레, 성경 삽화 <카인과 아벨의 제사>, <아벨의 죽음>, 1865년 출판, 인그레이빙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성경 삽화를 남긴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1883)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먼저 형제의 제사 장면을 보자. 전면 제단에서는 제물(곡식)이 잘 타지 않고 뭉글뭉글한 연기가 가라앉아 땅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바위에 걸터앉은 카인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반면 뒤쪽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아벨의 제단에서는 연기가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하느님이 그 향기를 기뻐 받으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번제(燔祭, burnt offering)는 제물을 불에 태워 그 향기(연기)로 신을 기쁘게 해 드리는 제사로, 구약시대에 다양한 목적과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다음 장면에서 아벨은 땅바닥에 쓰러져 누워있고, 막대기를 들고 뒷걸음치는 카인은 이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아우에 대한 질투와 하느님에 대한 분노로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죽인 것이다. 그들 사이에 구불거리는 작은 뱀은 하와를 유혹했던 뱀, 즉 인간의 죄악을 암시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구름 사이로 번쩍이는 번개는 하느님의 분노와 사건의 비극을 강조한다. 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잘 살린 몸짓, 세밀한 묘사와 극적인 구도로 인해 도레의 삽화는 마치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도레가 디자인한 228장의 판화 삽화가 삽입된 초판 성경은 1865년에 프랑스 투르에서 간행되었고,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계속 재판(再版)되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마치 눈앞에서 사건이 펼쳐지는 듯 생생하다.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도레의 삽화는 독자의 눈을 사로잡으며 상황을 떠올리고 상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ps. 성서의 많은 글이 부담스럽다면, 최근에 출판된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 성서를 먼저 접해보기를 추천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