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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Dec 07. 2018

14. 모성애와 연인 간 사랑의 차이

모성애와 연인 간 사랑의 차이

 아마도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은 없었던 것 같은데 사랑을 하면서도 일반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일 것이다. 부모가 주는 사랑과 연인과 하는 사랑에는 어떤 차이가 있고 본질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연애기술만 다루는 책이 판을 치는 시대에 근본적인 이야기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원래 그런 책이다.


 먼저 부모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범위를 좁혀 이야기를 풀어가보자. 부모의 사랑은 모두 본능적인 것이고 크기를 따지기 힘들지만 기본적으로는 모성애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하나로 얘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성애라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모성애를 어머니가 자식에 대해 갖는 당연한 애정이나 본능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하려면 일정 과정이 필요하다. 여성은 임신, 출산이라는 큰 짐을 안고 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그것이 왜 짐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생물학적으로만 볼 때 큰 짐인 것은 사실이다. 본인의 생존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도 다른 남성으로부터 자신의 여자를 지켜야 한다는 짐이 있다. 이것도 생물학적인 것이다. 지구 상 대부분 동물이 그러하다. 성욕이란 것도 남성에게는 큰 짐이다. 각자의 성에 부여된 짐이 있다.
 

 여성은 10개월의 임신기간 동안 몸속에 아기를 잉태한다. 이것은 모성애를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다. 사람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몸)이고 그 속에 있는 것은 바로 나이다. 포유류 동물 중에서 10개월의 임신기간은 짧지 않은 편인데 쥐처럼 작은 동물은 20일 내외이고 사자나 돼지 등은 3개월 반이다.(110~114일)

 유인원인 침팬지는 7개월 반이고 코끼리는 1년 하고도 10개월(640일)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임신기간은 짧지 않은 편인데 임신을 한 상태에서도 대부분의 활동을 지장 받지 않는 야생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몸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다. 이 기간 동안 제2의 '나'와 나누는 교감이라는 것은 피아 구분도 없이 일체화되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자라서 이 감정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지만 운명 공동체로서 모든 채액과 감정을 공유하는 두 존재가 갖은 일체성은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모성애가 생기는 두번째 계기는 출산이다. 이 어마어마한 과정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녀들이 평생 겪을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고통이 모성애를 결정적으로 크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엔 대리모도 있어서 이런 자연의 섭리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동물이든 사람이든 출산의 과정은 지극히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 후세를 이어가기 위한 생명의 사투이다. 


 어떤 동물들은 이 과정에서 죽는 경우도 많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생명체가 자기 존재를 계속 유지하면서 후세를 양산하면 생존에 더 유리할 텐데 왜 정해진 수명을 살까 이런 의문도 든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부모세대가 죽지 않으면 제한된 공간에서 세대 간 생존경쟁이 붙게 되고 개체가 죽지 않으면 진화도 어렵다. 한 세대가 사리지고 더 진화된 유전자가 나오는 것이 번식의 과정이다. 세대를 거치며 다양한 유전자가 발생하면 진화에도 도움이 되고 생존 가능성도 높여준다. 

 출산이라는 고통은 아이에 대한 강한 애정과 집착을 형성한다. 애정과 집착 두 가지를 합치면 애착이 된다. 부성애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모성애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은 이런 차이에서 시작한다. 예외 케이스도 분명히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힘들게 얻을수록 그것에 대한 애착은 커지게 마련이다. 고통 속에서 선물처럼 생겨난 아이에 대한 사랑은 끊을 수 없는 천륜이 된다.


 모성애가 생기는 과정이 또 있는데 바로 육아의 과정이다. 육아는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아이에게만 쏟아부어야 되는 중노동이다. 이 과정에서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고생해서 키웠는데 아무렇게나 자라길 바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산후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이런 힘든 과정을 통해 아이에 대한 커다란 애정이 생기게 된다. 입양한 아기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것도 이런 과정 때문에 가능하다. 부성애는 자신의 유전자라는 각인에서 시작해서 육아의 과정 동안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들이 없는데도 모성애가 생길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쉽게 단정하기 어렵지만 본능으로써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본능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모습은 자연의 놀라운 힘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여성의 경우 겨우 걸어 다니는 아이도 자기 동생을 돌볼 줄 안다. 능숙하지는 않아도 아기를 사랑해야 한다는 관념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반면 남성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가정을 봐도 어린 아기 엄마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능숙하게 아이를 돌본다. 그에 반해 남성들은 육아에 익숙해지는 데 애를 먹는다.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신기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아이에 대한 희생과 애착은 본능이라는 설명밖에는 할 수 없다.


 개를 키우더라도 보통 여성들은 자기를 엄마라고 칭한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도 능숙하게 자신을 엄마라고 한다. 그러나 남성들은 개를 키울 때 보통 동생이나 부하처럼 계급적 상하관계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모성애와 연인의 사랑은 어떻게 다를까? 가끔 사랑에 빠지면 부모가 보이지 않고 오직 사랑에만 열중하게 되고 그것이 부모의 사랑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과연 그럴까? 

 사랑의 정의에서도 언급했지만 모성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변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 중에서도 이 정도로 변하지 않는 감정은 없다. 이것은 그만큼 믿을 만하다는 얘기이고 얻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연인의 사랑을 잃고 다른 연인의 사랑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자주 듣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잃고 또 다른 어머니의 사랑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잘 들어보지 못한다.


 그만큼 얻기 힘들고 한번 얻으면 변하지 않는 감정이 모성애이다. 모성애가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결혼 후에 부부간의 사랑을 위협하는 부작용이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룰 것이다.


 아무튼 모성애가 불변이기 때문에 연인의 사랑과 비교가 부적합한 면도 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사랑에 깊이 빠지면 그것이 모든 것인 양 착각하기 때문에 이런 비교는 필요하다.


 연인 간 사랑하는 감정이 우상향으로 커지고 오늘의 감정을 반영한다면 모성애는 항상 100%의 감정으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감정을 다 담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모성애를 찬양하는 모양새가 되는데 누구라도 부모가 급속히 노년에 접어드는 시기를 경험하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성애는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 


 몇 년 전 나는 이사를 한 적이 있는데 고향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이삿짐 정리를 도와주셨다. 그런데 평소에 여기저기 아프시다고 하시던 어머니는 내가 힘들어서 쉬고 있는 동안에도 쓸고 닦고 아드레날린 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쉬지 않고 일하셨다. 몸살이라도 날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왜 그렇게 무리하시냐고 내가 물어봤더니 어머니는 "내가 가기 전에 최대한 해놓고 갈려고 쉬지 않았다.”라고 말하셨다. 자식을 위해서는 몸이 부서져도 아깝지 않은 게 부모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연인을 위해서도 이런 감정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부모 자식 간에 사랑이 식었다고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연인 간의 사랑은 언제나 나의 공허를 채워주는 사랑이자 구속적인 사랑이 수반된다.


 언뜻 모성애를 의무감과 착각하기 쉬운데 다소 공통분모가 있어도 같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의무감에서 나오는 행동은 그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행복감을 느낄 수 없지만 모성애는 다르다. 모성애는 행복감을 동반한다. 심지어 자신의 희생이 더 커도 행복을 느낀다. 

 행복감의 양은 어떨까? 연인을 사랑하는 감정은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을 정도로 크고 어떨 때는 너무 커서 고통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모성애는 주는 사람이 가슴이 아플 정도 감당하기 힘든 것은 아니고 일방적인 것이라 서로 상승작용 같은 것은 없다. 모성애가 만약 가슴 아플 정도로 크고 상승작용까지 있다면 아마 사람이 미쳐버릴 것이다. 그런 상태로 평생 지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행복감의 양은 최고치로 따지면 연인 간의 사랑이 더 높겠지만 평균으로 따지면 비슷할 것이다. 연인 간 사랑이 이루어질 때 그 행복감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치에 해당된다. 반면 모성애에서 오는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자기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보통 많든 적든 자신을 사랑한다. 인간의 자기애는 모성애의 쌍둥이 형제와 같다. 자기애는 설명 안 해도 알겠지만 인간이 스스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모성애는 자기애와 같기 때문에 비워지지 않고 무한히 샘솟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완전체가 되는 느낌이며 그래서 만족감, 성취감, 기대감이 동시에 든다. 연인의 사랑처럼 나를 흔드는 격렬함은 없지만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주므로 다른 감정과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이 든다.


 모성애와 연인 간 사랑에는 성질의 차이가 있다. 연인 간의 사랑은 매우 가변적이다. 오늘과 내일, 아침과 점심이 다를 수 있다. 어제는 사랑을 말하고 오늘은 이별을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성애는 죽어도 끊을 수가 없다. 예전에 어떤 뉴스에서 어머니를 살해하려고 칼로 찌른 자식에게 피를 지우고 나가라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새삼 모성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형성과정에서 연인 간의 사랑은 육체적인 연결고리가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진다.(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 그렇다면 정신적인 것이 먼저란 얘기인데 정신적인 연대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나 빈 곳을 채워주는 데서 시작한다. 사랑의 발생과정에 대해서는 다른 챕터에서 충분히 언급했으므로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다. 모성애의 발전과정이 출산과 육아라면 사랑의 발전 과정은 두 사람이 같이 보낸 추억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이 공유한 기억의 쌓일수록 사랑이 발전한다. 다만 육아는 아무리 힘들고 길어도 애정이 증가하지만 사랑은 기억이 쌓일수록 서로 신뢰는 두터워질 수 있지만 애정은 일정 한계를 기점으로 점차 하향곡선을 그린다. 이것이 두 가지 사랑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모성애는 상승해서 최고점에 이르면 그 상태를 유지하지만 연인의 사랑은 최고점에 이르면 내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이 차이가 바로 육체의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성애는 일방적으로 이뤄지므로 한 사람만 행복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연인의 사랑은 두 사람의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성적인 관심이 개입하므로 익숙해지면 관심도는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적인 관심이란 것도 주로 남성에게 큰 것이어서 연결고리로는 약하다. 두 사람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 여성이 동조할 수는 있겠지만 남성의 것만큼 절박하지는 않기 때문에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모든 관심은 익숙해지면 사그라들게 마련이므로 성적인 관심도도 하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쯤에서 질문해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성적 관심은 왜 쉽게 사그라들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적으로는 번식 및 생존과 관련이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다양한 유전자와 결합할수록 후손의 생존 가능성은 높아진다. 한 사람과 같은 아이를 계속 낳아도 생존 가능성면에서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또한 도덕과 이성을 무시하고 생각해보면 익숙한 것에 대해 관심도가 낮아야 근친교배를 피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유전자가 결합되어야 종의 진화는 촉진된다.


 보통 동물들은 성체가 되면 본능적으로 터전을 떠나 살고 근친을 피하도록 되어있지만 인간은 본능적인 면이 약해 근친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로마 시절 왕족들의 친족 간 성적 관계를 생각해보면 답이 될 것이다. 


 이렇게 부모가 주는 사랑과 연인이 주는 사랑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연인이 사랑스럽더라도 그것이 부모의 사랑을 대신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의 사랑만으로 연인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다. 

 이 정도면 모성애와 연인의 사랑 사이에 차이점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이다. 어쩌면 벌써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무의식 중에 알고 있는 것,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풀어서 정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이 책 속의 담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동의한다면 아마도 앞으로 사랑을 보는 시각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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