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관계 함수
인간관계란 무엇일까? 나이나 성별을 떠나 인간관계가 쉽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대인관계가 좋다는 말을 듣는 사람조차도 그것이 쉽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남과의 관계도 이렇게 어려운데 내밀한 두 사람의 연인관계는 더욱 어렵게 마련이다. 더 많이 부딪히고 서로 엮이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도 크다.
이번 장에서는 사랑이라는 관계가 어떻게 얽히고설키는지 알아보고 나와 파트너의 관계를 넘어서 좀 더 큰 차원에서 사랑이라는 관계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다.
두 사람의 관계
사랑이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을 하고 신뢰를 쌓아간다. 두 사람은 동지가 되고 가족에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가족에 가까워지는 것이지 가족이 될 수는 없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결혼과 같은 제도를 통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가족이 될 수 없다. 즉 가족이란 인간관계의 가장 강한 형태로 인위적으로 끊을 수 없어야 진정한 가족이다. 결혼이란 인간이 만든 제도일 뿐이다.
헤어지면 그만인 연인관계는 물론이고 이혼으로 정리할 수 있는 혼인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부모 자식 관계나 형제관계 같은 혈연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원수가 지더라도 남이 될 수 없는 게 가족이다. 자식이 일촌인데 부부관계를 무촌으로 규정한 것은 이미 이런 것을 간파한 선조들의 지혜가 아닐까?
사랑에 빠져서 상대방을 가족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훗날 후회할지도 모른다. 처음 사랑에 빠지거나 한 사람을 너무 사랑하면 그것이 가족처럼 소중하게 느껴지고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랑은 변곡점이 있고 원하지 않더라도 감정이 식어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튼튼하게 보이던 두 사람의 관계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아무리 사랑이 깊더라도 가족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끊을 수 없는 관계란 서로 긴 안목으로 볼 수 있는 관계이다. 예를 들어 동생과 나의 사이가 일시적으로 안 좋다고 해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동생과 함께한 시간 전체가 동생을 바라보는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남과는 아주 짧은 기간을 놓고 판단하게 된다.
관계라는 것을 이 책의 한 챕터로 다뤄보기로 생각한 것은 인간의 관계 속에서 특이한 면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한(One) 관계는 그것만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관계가 변화할 때 다른 관계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상에는 수많은 관계가 있고 이 관계들은 서로 직간접적으로 이어져 있다. 케빈 베이컨의 여섯 다리라는 이론이란 것도 있는데 6단계만 거치면 누구든 연결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인간은 이런 관계로 엮여 있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수면에 파장이 일어난다. 그것은 수많은 작은 파장들을 만들어내고 서로 간섭하고 교차하면서 영향을 미친다. 우리 인간관계도 이와 같다.
재밌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사랑했던 여자(A)와 남자(B)가 이별했다고 하자. 두 사람은 솔로인 다른 두 남녀(C, D)와 각각 다시 사랑에 빠졌다. 두 커플이 생긴 것이다. 이중 한 커플(B, D)이 헤어졌다. 이제 한 커플과 두 사람의 솔로가 있다. 솔로가 된 두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랑을 찾을 것이다. 이들이 한 공간에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간다고 가정하면 하나 남은 커플은 두 사람의 솔로 때문에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
B, D는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커플을 위협하게 된다. A와 C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주변 환경이 위협적으로 변한다. C는 D의 새로운 유혹에 놓여있고 A, B가 다시 만날 가능성도 있다. 과연 A, C 커플은 유지될 수 있을까? 단 네 사람의 예를 들었는데도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며 얽힌다. 이게 확장되면 어떻게 될까?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는 이렇게 시작된다.
인간관계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사랑만 놓고 보면 조금 단순화할 수 있다. 일단 사랑의 관계를 도식화해보자. 어떤 커플이 사랑하다 헤어질 때 한 개의 관계(1 depth)가 파괴되지만 이전에 사귀던 관계(2 depth)라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자유롭게 된 두 사람(A, B)이 새로운 관계를 위해 노력할 때 기존에 성립되어 있던 커플(C, D)에 위협이 될 수도 있고 솔로였던 사람(E, F)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것은 모두 최초의 커플(A, B)이 헤어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얘기를 더 단순화해보자. 헤어진 사람(B)이 다른 커플(C, D)을 깨고 사랑에 빠지고 깨진 커플의 남자(D)가 다른 커플을 또 깨고 사랑에 빠진다고 해보자. 이런 식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하나의 관계가 끝남으로 써 연쇄적으로 다른 관계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연쇄작용의 출발은 A, B가 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커플(C, D)을 깨지 않고 싱글인 사람(E, F)을 만났을 때도 관계에 영향을 주는데 바로 E, F가 서로 커플이 될 가능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커플(A, B)이 깨졌기 때문에 E, F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그림 4에 잘 나타나 있다.
더 재밌는 것은 헤어지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A가 E를 사랑해서 B와 헤어지게 된다면 B는 상처 받겠지만 A는 E와 사랑을 얻게 되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새롭게 만난 E와의 사랑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새로 사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앞으로 연인으로 지내면서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A는 B와의 안정적 관계보다는 E와의 불확실한 관계를 택한 것인데 그만큼 E를 좋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A는 이 과정에서 관계가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A는 이제 이별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 완전무결한 사랑은 없고 자기(A)처럼 할지 모르는 사람들과 사랑을 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에 변화를 준다. 이제 A는 사랑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고 E도 언제든지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했었으니까. A가 이런 식으로 더 많은 관계를 형성한다면 더욱 그런 생각이 굳어질 것이다.
인간은 사랑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안전성과 효율성을 찾게 된다. 그래서 최소한의 노력을 최대한의 기쁨을 얻으려 한다. 그런데 노력의 투입량이 적을수록 그것을 통해 얻는 기쁨의 양도 적을 수밖에 없다. 신기하게도 즐거움이란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한 양과 비례한다. 경험이 많은 A는 효율적인 사랑을 추구하고 다시는 B와의 사랑에서 맛보았던 만족감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이것이 첫사랑 효과이다.
인간관계는 이렇게 연결되어있다. 하나의 파장이 다른 파장을 만들어낸다. 한편으로는 하나의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된다.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면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이 관계이기에 우리는 거기에 자연스럽게 대응하면 된다.
비록 이번에는 돌을 맞았더라도 다음에는 돌을 던지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인간관계의 속성을 알고 사랑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사랑은 너무나 튼튼해서 영원할 거라 믿으면 오히려 그 믿음이 사랑의 붕괴를 촉진한다. 사랑은 3개의 발을 가지고 서있는 인간의 감정일 뿐이다. 그 다리 중 한 개만 부러지면 그대로 무너진다.
사랑이 굳건하다고 믿을 때도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되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주변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안팎으로 위협요소는 없는지 사랑의 주기에서 우리가 어디쯤 와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작은 실수도 나중에 보면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이 나비효과가 되어 사랑의 거대한 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모습을 알아두는 것은 중요하며 여기서 제3 자라는 것은 없다. 어떤 인간관계의 변화는 반드시 주변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당신은 당사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