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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Dec 14. 2018

15. 요즘 사랑의 조건

요즘 사랑의 조건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19세기에 지은 '연애론'이나 18세기 괴테의 유명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책을 보면 그 시대의 사랑에 관해 단면을 볼 수 있는데 만약 23세기의 누군가 내 책 '사랑에 관한 모범 학습'을 본다면 현 세태에 대해 알려줄 챕터가 1개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한국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지금 시대의 사랑에 관해 정리하는 장을 마련했다.


 최근 세태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해보겠다. 최근 한국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연애나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이것이 하나의 세태가 되어가고 있다. 진짜 그런지 언론의 호들갑인지 모르겠지만 삼포(결혼, 연애, 출산 포기) 세대니 뭐니 해서 매스컴이 대중에게 세뇌시키다 시피하는 '돈 없으면 사랑하지 말라'는 세태는 책을 통해 반드시 비판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갖춰진 사랑

 두 사람이 만나 같이 오락을 즐기고 관계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지출이 필요하고 가정을 이룬다면 더욱 경제적 기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사랑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본질도 아니다. 왜 한국의 연인들은 다 만들어진 바탕 위에서만 시작하려고 하는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싫어서? 아니면 어느 정도 보장된 미래를 가지기 위해?


 정부에서도 이런 세태를 감안해 각종 신혼부부 지원 정책을 내놓고 결혼을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랑하고 함께하는 것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초월한 문제이며 집이든 혼수든 준비가 잘 되더라도 서로에게 충실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모든 건 그다음 문제이다.


 젊은 세대의 어려움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모든 게 기성세대, 사회 탓, 환경 탓이야'라고 말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는 책 제목부터 '열정 같은 건 개나 주세요'로 바꾸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관점(역사적, 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젊은 세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달콤한 말로 포장하고 뒤로 인세나 챙기는 짓은 도저히 못하겠다. 아프더라도 잘 들어주기 바란다.


 두 사람의 사랑을 어떻게 이어갈지, 결혼 후에는 어떻게 살 건지 고민하는 것보다 결혼식을 어떻게 치를 건지 더 크고 좋은 집을 어떻게 장만할지만 고민하고 있어서는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이나 남이 가르쳐준 대로 살아서는 당신들이 원하는 행복은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행복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남이 하는 방식대로 하다간 내 행복은 뒷문으로 도망쳐 버린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후진국일수록 결혼식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어떤 저개발 국가에 가면 결혼을 위해 집은 물론이고 건강한 소 수십 마리를 처갓집에 바친다. 아프리카 부족에서는 마을 잔치를 한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나마 허례허식을 많이 간소화한 게 현재의 모습이다. 배우 원빈, 이나영의 스몰 웨딩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큰 곳에서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성대한 결혼식을 해야 만족한다. "인생의 단 한 번뿐"이라는 말에 모든 것을 쏟아낸다. 나는 그런 사기에 속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왜 단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단 한 번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결혼은 한번 하더라도 우리 인생이 그 한 번의 이벤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일까?


 이것은 합리성의 문제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제도에 불과하다. 당신들은 이 제도의 노예가 아니라 제도와 상관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다. 집이 없기 때문에 혹은 결혼식이 화려하지 않아서 당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해질 직접적 사유는 없다. 남들처럼 살려고 해서는 어떤 행복도 오지 않는다. 

신진국의 사랑방식

 선진국의 연인들은 결혼이라는 것의 의미가 한국처럼 크지 않다. 그래서 동거 형태의 결혼도 많은 편이다.  결혼은 인생에서 매우 큰 일이지만 결혼식이라는 이벤트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두 사람이 같이 사는데 큰 의미를 두고 대부분 합리적인 선에서 시작한다. 남의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두 사람이 행복하면 그만이다. 집안간 만남이라고 강조해도 두 사람이 행복한 다음에 집안도 있는 것이다. 집안이 원수라도 부부가 사랑하면 그 커플은 유지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아무리 집안이 가깝더라도 부부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 


 우리는 남보다 낫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으며 남보다 못해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상대성이라는 것은 결국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인데 그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높은 곳에 기준을 두면 한 없이 불행할 것이고 남이 아닌 나와 내 파트너의 행복에만 관심을 둔다면 어떤 조건에서도 행복할 것이다.


 물론 빈곤의 수준이 심각해서 기본적인 의식주가 어려울 정도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두 사람의 같이 사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라면만 먹어도 행복하다는 식의 비현실적인 얘기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하고 있어서 라면이 라면으로 보이지 않고 젊고 건강한 두 사람이기에 내일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면 하나도 불행할 것이 없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연인들이 환경 탓을 한다면 이해하겠다. 개선될 미래가 없으니까. 그러나 미래가 있는 연인들이라면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갖추고 시작해야 행복하다는 논리라면 빈부격차가 심한 현대 사회에서 하층민들은 아예 결혼을 못해야 맞다. 여자들은 상류층과의 결혼만을 꿈꾸고 중간 이하의 수입을 가진 남자들은 노총각으로 늙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수입에 맞게 생활하고 그 안에서 사랑하고 선입견이 아닌 마음이 끌리는 사람과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일부는 상류층만을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대세이거나 당연한 것은 아니다. 


선진국이 되지 못한 나라의 사랑방식

 중진국 이하의 나라에서는 아직도 개인보다는 단체를 강조하고 남의눈을 많이 의식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구가 1억을 넘지 않고 땅이 좁은 데다 인종이 단순할 때는 더욱 그렇다. 서로가 비슷하니 조금이라도 나아보이기 위해 경쟁한다. 


 사회적인 성숙도가 낮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가치나 존재 의미가 돈으로만 평가되고 일률적인 잣대만이 사회적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 후진적 사회구조이다. 사회가 좀 더 고도화되고 발달되면 개인의 의미가 커지고 복잡다단한 사회구조 속에서 남을 신경 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 된다. 내가 더 중요하고 내 행복을 위해서 살기도 바쁜 데 옆 사람이 좋은 옷을 입든 좋은 예식장에서 결혼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가 거액의 자산가라 해도 내가 좋으면 무명의 가수와 결혼할 수도 있고 거기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다. 사랑의 본질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곧 행복을 가져다준다. 형식적인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속이 비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실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현대 인간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조직과 단체를 더 중시하는 단계에 머물러있다. 이 단계를 빨리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돈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돈으로 만들어지지도 돈만으로 유지될 수도 없다. 이 주장에 반대할 사람도 많을 텐데 본질적으로 사랑이 물질의 도움을 많이 받을수록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변하지 않을수록 가치는 높아진다. 변하는 것은 흔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질은 영원하지 않다. 물질 위에 세워진 사랑이란 그래서 불안정하고 가치도 떨어진다.

 통계청 결혼 통계를 보면 이혼사유로 가장 많은 것이 경제적 사유이다. 그런데 정말 경제적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일까?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도 우리나라 국민의 생활수준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그런데 경제적 사유는 왜 지속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을까? 이것은 만족도의 문제이다.  인간은 끝없이 만족을 추구한다. 집이 없다가 집을 사면 만족할 것 같지만 집에 들어간 날부터 더 큰 집을 꿈꾼다. 이게 인간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항상 애들 키울 돈이 없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돈을 버는 만큼 더 많이 쓰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사랑을 보는 관점에서 물질을 후순위로 둬야 한다는 것이 이런 이유이다. 물질은 가변적이며 채워지지도 않는다. 그것을 쫓는 한 우리 인생에 행복은 오지 않는다.


 인간의 허영과 현실의 문제는 맞닿아 있다. 현실이라는 말 안에는 허영이 포함되어 있다. 현실이 중요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허영에 빠져든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무게를 두고 그것을 생각할수록 허영에 빠져든다. 모든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계산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현실과 멀어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놓치고 현실 타령하며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보장받으려 한다. 이게 비현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 행복을 찾는 법

 행복을 찾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나를 위한 행복. 그리고 우리를 위한 행복을 생각하라. 그것은 현실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 우리 관계와 자세가 가져다준다. 남을 따라가는 길이 안전하다고 여기니까 자기가 행복해지는 길에 대해서는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현실이 어려우니까 사랑할 수 있고 공동의 과제를 향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하루 1시간도 대화하기 힘든 부부를 우리는 이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복한 결혼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대방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사랑이 현실과 만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경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같이 고민해 가면서 답을 찾으려 할 때 더 깊은 관계가 될 수 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한국 속담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현실의 문제들을 그저 물질의 보호 속에 피하려고만 하는 태도가 문제이다.


 현실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무너지지 않게 버텨내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관계를 위협하는 주변 환경에 대해 내성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끈끈하고 깊은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며 이것은 사랑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감정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그 사람의 외모나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상대방의 매력이 사랑을 유지시켜주지만 현실의 문제를 같이 극복해가면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내 파트너의 매력을 알게 된다. 이 단계로 넘어오면 사랑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다. 단순 매력에 반한 사랑이 아닌 서로의 본질적인 장점을 좋아하는 사랑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랑은 이런 모습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행복해지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가 하고 싶은 사랑이다. 시대는 더욱 복잡해지고 어려운 문제를 제시한다. 단순하게 사랑을 말할 수 있는 낭만시대는 지나갔다.


 행복하고 오래가는 사랑을 하는 방법은 더 안전한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통의 목표를 향해 같이 도우면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다. 다 만들어진 것 위에서 시작하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사랑이 첫 번째이고 그다음이 삶이다. 나이가 들면 삶의 문제가 뼈아프게 다가오지만 이때에도 사랑을 버려서는 안 된다. 실질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것이다. 완성된 것이 아닌 만들어가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행착오도 겪고 오해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만들어진 물질적 기반이 사랑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폭을 줄이고 그만큼 서로 노력하려는 의지도 사라지게 한다. 예를 들어 작은 원룸에서 시작해서 열심히 모아 중대형 아파트를 장만했다고 한다면  여기까지의 과정은 함께 공유하는 것이고 그만큼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영화를 중간부터 보느냐 처음부터 보느냐의 차이와 비슷하다. 아무리 결말을 잘 만들어서 감동이 넘친다고 한들 중간부터 보면 감동이 그만할까? 단계적으로 밟아가는 가며 인생을 더 완성된 모습으로 다듬어 가는 자세가 더 공고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어느 것도 당신의 인생을 보장해주는 것은 없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결혼식을 화려하게 하고 큰집에서 시작한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보다는 서로의 사랑과 관심을 더 깊게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 '만들어가는 과정'을 겪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다. 남과 비교해서 나으니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때뿐이다. 작은 것이라도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연대의식과 신뢰를 가져다준다.


  꽃길만 걸은 커플은 한 번의 시련에도 좌절하게 마련이다. 인생은 꽃길이 아니다. 어쩌면 진흙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흙탕 위에 꽃을 깔 생각하지 말고 같이 힘을 모아 빨리 진흙탕을 건너고 다음번에는 더 나은 길을 택할 힘을 기르도록 하자. 진흙이 묻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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