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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내이팅게일 Mar 22. 2022

긍정

두 마리의 늑대


한병철의 '피로사회'라는 책에서는 '오늘날의 정신 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한다.'라고 말하며 긍정성의 과잉이 자아를 새로운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더불어 '고통 없는 사회'라는 책에서는 '긍정심리학은 고통을 초래한 현실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대신 심리적 조작을 통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라고 말하며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사회환경학적으로 분명 우울증을 초래하는 성과주의 사회임은 틀림없으며 사회구조의 변화보다는 개인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병원에서 환자들과 나의 삶을 바라보면서 분명 우리는 인지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사고를 하며, 그로부터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밌는 미국 인디언 문화의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 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한 마리의 늑대는 화와 원망,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늑대고, 다른 한 마리는 희망과 사랑, 평화와 기쁨, 감사로 가득 찬 늑대지." 그러자 손자는 "그럼 두 마리 늑대가 싸우면 어느 늑대가 이기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인간은 확실히 긍정의 늑대보다 부정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그 습성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긍정적으로 살자'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좌우명을 갖기까지는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일단 나는 입술이 뾰로통하게 삐져나오기 일쑤였으며 다른 사람에게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꿍한 그런 '찌질이'였다. 언젠가 문득 이런 내 모습을 마주하고는 그때부터 '긍정적으로 살자'라는 좌우명을 가졌다.



지금의 나는 많은 모습들이 변했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좌우명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처음부터 수월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마침 오늘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를 보면서 친구에게 불과 10년 전의 나도 남자 주인공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고백했다. 내가 긍정적으로 살자고 다짐한 순간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CST 성격 강점 검사에서 긍정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되었다.



"긍정_당신 자신이 소중하고 온전한 사람임을 믿는 연습을 하세요.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의 고통에 붙들리지 않도록 소중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찾아보세요. 그 가치를 위해 오늘 지금 여기에서 당신의 몫을 기꺼이 해보세요. 그리고 최선을 다해 보세요. 가능하다면 미소를 짓고 해 보세요. 지금 당신에게는 나눌 수 있는 좋은 것들이 많다는 것을 반복해서 생각해봅니다. by Mindground 컬러 엽서 중에서"



다만 우리는 긍정주의와 낙관주의의 차이를 인지하고 적당한 수준의 긍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다. 모든 것을 좋게만 바라보라는 의미에서 긍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는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집어넣지 말 것, 삶의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 것,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찾을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100% 고통으로만 가득 찬 인생은 없기에 사소한 기쁨을 찾고 이를 충분히 느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도 긍정 확언을 통해 당신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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