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베를린과 200일째 연애 중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람은 아니고, 도시와.
이름은 베를린.
함께한 지 200일째 되는 날이다.
처음엔 낯설었다.
지하철 노선도는 복잡했고,
언어는 벽처럼 느껴졌으며,
햇살조차 이상하게 따가웠다.
모든 게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도시는 나를 밀지 않았다.
조용히 거리를 내주었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이 도시에 조금씩 기대기 시작했다.
나는 베를리너 돔을 좋아한다.
그 앞 잔디밭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의 발걸음,
그 모든 것이 마치 나를 위한 무대처럼 느껴진다.
퇴근길, 에스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본다.
가끔은 붉고, 가끔은 푸르며,
가끔은 아무 색도 없이 투명하다.
그 하늘을 볼 때마다
이 도시에 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정말 너무 열심히 살았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내야만 했고,
항상 누군가에게 증명해야만 하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의 나는 다르다.
이 도시는
그동안 너무 애써온 나에게
“이제는 조금 쉬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는 여기서 보상받고 있다.
나 자신으로 살아도 괜찮은 삶,
그 자체가 이 도시가 내게 주는 환대다.
편의점 대신 마주치는 공원과 산책길,
무심히 지나가다 눈 맞춘 강아지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웃게 만드는 하늘의 구름들.
나는 이 도시와 연애 중이다.
조건도, 확신도 없지만
매일 조금씩 나를 사랑하게 해주는
가장 느슨하고 따뜻한 방식의 사랑.
베를린이 내게 속삭인다.
“네가 여기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나도 이 도시에게 조용히 대답한다.
“나도 그래. 너와 함께라서, 참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