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요조가 이해되지 않나요, 신선한 충격으로 그가 단지 불쌍한가요.
그런 요조의 마음을, 그랬던 행동을, 그가 느꼈을 비참함과 자괴감과 부끄러움과 모멸감을, 나는 무척이나 공감했다. 너무도 사소해서, 혹은 나의 말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아서 문장으로 차마 정리하지 못한 것을 정갈히 적은 요조의 글을 읽으며 여러 번 맞아, 맞아, 하며 간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듯이 열심히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그런 요조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닌, 담담한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야, 나도 그래.
사람이 어려웠고, 조직은 더 어려웠다. 그 조직이 세상의 전부였을 때, 나는 틀린 아이였고, 문제아였다. 물건에 불량품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잘못된 사람이었다. 조직에 익숙하게 물들어 어울리는 사람은 정상인, 그러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힘들어하는 나는 '틀린'인. 그 작디작은 조직이 나의 전부였을 때,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간단한 생각의 인과였다. 나는 불량이고, 이걸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며, 계속 이렇게 불량인 채로 살 바에야 그냥 내가 빨리 나를 없애는 것이 좋은 해답이라는, 그런 전혀 복잡하지 않은 간단한 원인과 결과.
누가 죽음에는 삶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라고 했던가. 참 우습게도 어떻게든 이런저런 노력은 해봐야지 않겠냐며, 이왕 죽을 거 최선의 노력은 해보고 죽자며, 사실은 죽는 것이 두려운 속내에 얕은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조직에 속하려고 했다. 그때 그 노력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 하니, 어쩜 이리도 요조와 비슷했을까.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하고, 감흥 없는 시시한 얘기에 격한 리액션을 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연예인을 좋아하는 척을 하고, 내 취향은 뭔지도 모르면서 그들의 취향의 옷과 물건을 사기도 했다. 그들이 웃기고 활달하고 털털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그런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도 하며, 우스운 농담과 야한 농담으로 익살을 부리고, 그다지 놀라고 재밌는 얘기도 아닌데 어떻게든 이목을 집중시키겠다며 과장과 오버가 범벅된 재치를 부리며 얘기하곤 했다. 요조가 무슨 감정을 느꼈을지가, 요조가 어떻게 행동을 했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가 거울처럼 보였다.
그런 노력을 하면 할수록 모순적이게도 불안감과 초조감과 우울감은 커져갔다. 어제는 웃으며 나의 손을 잡고 같이 밥을 먹던 그들이 내일은 여느 어떤 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나의 등 뒤에 덩어리 지어 모여 서서 나를 빼고 나의 이야기를 하곤 했고,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말 한마디가, 아니, 그 어떤 것도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결코 나는 풀지 못하는 그 '어떤 무언가'가 한순간에 조직의 흐름을 바꿔놓고는 했다.
어느 날은 무리의 한 사람과 작은 다툼을 했고, 나는 그 사람과 다퉜으니 그 사람과 단 둘의 문제라고 생각하여 내일 대화를 통해 얘기를 하고 사과하려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 바로 모두에게 일방적으로 떠들어댔고, 날이 밝은 내일은 내가 대화를 시도할 새도 없이 한순간 무리의 흐름이 바뀌었던 적도 있었다.
어려웠고, 너무 어려웠다. 계속 반복되는 어려움은 결국 나의 어려움으로 귀속되었다. 단지 내가 그 조직과 맞지 않아 그런 것이라는 생각은 사고의 씨앗도 심지 못했다. 그냥 전부였고, 주류였으며, 모두가 따르고 있으니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당연히 사람이라면 조직에 속해야 하는 것을, 그것을 못하는 나는, '잘못된' 사람이었다.
전부가 깨져야 진짜 전부를 볼 수 있었다.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아야 진짜 전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작디작은 조직에서 벗어나 넓은 평야를 봤다. 지대는 끝을 모를 만큼 뻗어있었고, 사람들은 셀 수 없을 만큼 흩어져 있었으며, 그들의 모양은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조직에서 봤던 모양보다 훨씬 다채롭고 다양해서 감히 종류별로 나눌 수 없었다. 하늘은 작은 직사각형이 아닌 나의 발끝을 넘고도 남는 커다란 우주였고, 구름의 움직임과 별의 위치와 달의 모양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한참을 그렇게 눈이 부시게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끝이 가늠이 되지 않는 끝을 보다가 시야는 점차 나의 발끝으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나를 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누구지, 누구였지, 나는 뭐지. 아니, 도대체 뭘 가지려고 했던 거지. 나에 대해 어떤 생각도, 느낌도, 취향도, 성향도, 성격도, 그 아무것도 몰랐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나를 미워했을까. 도대체 왜 나를 그토록 좌절시켰으며 괴롭혔을까.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갈기갈기 헤진 헝겊 같은 나만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불량품이 아니었다는 것을, 단지 그들과 맞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조직에 속하고 따르려 나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조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틀린 것'이 아닌 그저 '달랐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외부로만 뻗어 나던 나뭇가지가 텅 빈 몸통을 채워주니 속에 새살이 차올랐다. 날 짓누르던 중력에 저버리는 걸 그만두고 저항을 지지대 삼아 고개를 들었다. 불안함과 초조함에 견딜 수 없어서 발버둥 치기보다 눈을 마주했다.
시간이 지나 작은 일상이 뭉친 삶을 살고 있어보니, 세상에 조직은 더 무궁무진하고 이젠 나의 의지랑은 상관없이 유독 더 어려운 조직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곤 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어서 버티거나 감내하거나 기꺼이 소화해내야 했다. 이게 사회생활이었다.
암묵적인 문화가 절대적인 힘을 가지면 특유의 묘한 분위기가 안개처럼 내려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타적으로 보였지만 배타적이었다. 다른 사람의 등을 토닥이는 손보다 자신을 쓰다듬는 손이 많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손을 보지 못했다. 질문이나 대답보다는 정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보이지 않는 기류는 미세한 입김에도 이리저리 쉽게 옮겨 다녔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고, 섣부른 판단은 바닥에 널려있었다. 그것들은 대체로 얼룩덜룩했고, 몇 개는 뾰족하게 날이 서 있어서 살짝만 스쳐도 살은 쉽게 뜯기지 않을까 싶었다. 꽤 위험해 보였지만 신기하게도 손을 몇 번 휘젓기만 하면 쉽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곤 했다. 너그러움과 엄격함의 기준이 여러 개여서 옷장에서 옷을 골라 입듯 이리저리 맞춰 입었고, 어느 날에는 입을 옷이 없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상냥하면서 동시에 표독했다. 그 모습에서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달에게 맹세하지 말라는 대사의 진가가 반짝거렸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사실 심판은 경기를 보는 게 아니고 연기력을 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과 등산이라는 말은 산을 탄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등을 탄다는 말이 아닐까라는 아이러니가 만연하는 조직일수록 어려웠다. 솔직히 피곤했다.
묘한 공기가 짧게 흐르다 곧이어 다들 웃어넘긴다. 그들의 광장에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어울리지 못하는 나는 어느새 또다시 사회생활은 모르는 애송이가 되고, 그들의 당연함에 물음표를 던진 문제아가 되며, 그렇게 ‘잘못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이제는 깨달은 걸 어떻게 하나.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나와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내가 편해하는 것과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나에게 그들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뭘 이런 걸 다' 활짝 웃으며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의 기묘한 서커스를 구경해 본다. 그들의 광장에 소속되기 위해, 주류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들 사이에 끼어 들어가기 위해 더 이상 나를 죽이면서까지 애쓰지 않는다. 그저 흥미롭게 관조하며 그들만의 광장 속에 펼쳐지는 서커스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시간은 매번 경험을 들고 왔다. 시간이 쌓이는 만큼 나에게 경험도 함께 쌓였다. 쌓이는 경험을 이리저리 괜찮은 곳에 배치하고 알맞은 곳에 조립하다 보니 낯선 것에 적응하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에너지 소모도 줄어들었다. 물론 여전히 미래를 달려서 괜한 걱정을 하고, 사람 대하는 건 매번 까다로웠으며 때로는 모두가 다 피곤하고 귀찮아지기도 했다.
사람이 제일 어려운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굳건한 태도와 차분한 감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었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이 세상에 틀린 사람은 없다는 것을 되새겨본다. 틀림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저 다름이라는 단어에 중심을 놓는다. 그들에게 매몰되기보다 나 자신에게 몰입한다. 왜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왜 불편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는지에 집중한다. 나도 같은 사람일 테니 나도 누군가에게는 저러지 않을까 부끄러워하며,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싶은가 질문을 던진다. 더 나은 내가 어떤 사람인 걸까 항상 고민한다.
꽤나 기괴스러운 묘기를 선보이며 서로에게 갈채를 보내는 저들에게 힘없이 물들어 가는 게 아니라 저들을 보며 나만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간다. 얼기설기 섞여 이도저도 아닌 알 수 없는 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명한 색으로 다채로운 색을 만들어 내고 싶을 뿐이다.
요조는 끝없이 자신을 세간에 속하게 만들고자 했다. 자신이 세간과 맞지 않는 사람임을 잘 알면서도 세간에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자신이랑만 마주할 수 있는 충만한 시간은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니었을까. 그런 귀한 시간과 그림이라는 행위를 그는 또다시 그저 자신이 조직에 인정받고 속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유일한 도구로만 여겼다. 그에겐 세간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를 둘러싼 그 작은 세간이 전부였기에, 그것에 자신의 인간 자격에 대한 판단과 기준을 세웠던 것이다. 아마 그가 살던 시대는 개인보다 조직이 훨씬 우선되고 주류가 되며 중요하게 여겨져 전부임이 더욱 도드라졌을 때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가 그렇게 매몰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재는 아닐 거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지금의 내가 그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건 오만이다. 여전히 사람이 어렵고, 조직은 더 어렵다. 그러나 나에겐 요조가 있기에, 나는 그에게서 담담한 한마디를 듣는다.
사실 저의 깊은 얘깁니다. 어쩌면 고백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네요. 저 얘기를 이렇게나 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렸습니다. 쓰기가 참 항상 어렵더라고요. 매번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이게 아닌데, 이 느낌이 아닌데, 말하고 싶은 게 이게 아닌데 이러면서요. 혹시라도 비슷한 기억에 짙은 글이 되길 바라면서, 동시에 제 다짐도 썼어요. 사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영향받고 싶지 않다고 해도, 아무리 흔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알게 모르게 물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곤 해요. 원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그게 참 무서운 거잖아요. 그래서 조직이라는 게, 집단이라는 게 더 무서운 것도 있죠. 흔들리지 않지만 더 흔들리지 않고 싶고, 계속 생각하지만 더 선명하게 생각하고 싶고, 더 반성하고 더 부끄러워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