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실비아 살다, 실존인물 모티브
소설가이자 시인인 '실비아'에게는 한 가지 독특한 행위가 있다. 10년에 한 번씩 반복하는 자살 시도. 마치 실비아에게 그 행위는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 여정을 계속하기 위한 의식적인 관문과 같다. 살려고 한 그 행위가 결국에는 완전히 성공해 버렸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실비아의 생을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조금의 상상을 더해본다. 바로 '빅토리아'라는 새로운 인물이다. 빅토리아는 그런 실비아의 곁을 맴돌며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한다. 상상일 뿐인 뮤지컬 시나리오 속의 인물이지만, 정말 실비아에게 빅토리아가 있었다면, 적어도 빅토리아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이 이어진다. 과거이자 현재일 자신을 바라보는, 미래에서 온 또 다른 자신. 매번 극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곰곰이 씹어본다.
어린 시절, 간헐적으로 손목에 상처를 내곤 했다. 그게 자해였다는 것을 알기까진 시간이 꽤나 지나야 했다. 지금처럼 다양하고 엄청난 양의 정보가 친절하게 전달되지 않았기에, 그때의 나에게는 그저 단순한 유희나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그것에 알맞은 명칭과 설명은 나에게 기억을 거슬러 되새기기에 충분한 신호탄이었다. 앞으로 발을 갓 내딛는 나에게 어떠한 의무가 생긴 느낌이었다. 듣고 싶었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순간들이 쌓여 어느덧 만성이 된 미세한 파동의 불안이 몸을 가득 채웠었다. 외부의 옅은 바람에도, 작은 움직임에도 파도가 쉽게 일렀다. 푸석한 초조함은 밤이 되면 항상 극심해졌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왔다. 짙은 밤이 더 짙어질 때까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지쳐 기억이 끊기듯 잠에 들 때까지, 어떤 날에는 하얗게 밝아오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힐끗거리다가 외면하듯 잠깐 눈을 붙일 때까지 내 몸 위로 형태 없는 물안개가 차곡차곡 쌓였다. 어둠은 무거웠고 빛은 서늘했다.
한낱 천 조각에 불과할 교복이 유독 무겁고 질척거리는 날이면 교실 문을 열기가 겁났다. 뻣뻣하고 축축한 공기에 한껏 눅눅하게 들러붙은 교복을 집까지 끌고 돌아올 때면 꾸역꾸역 삼킨 숨소리가 뒤늦게 펑펑 터졌다. 한 걸음일 거리를 천 걸음으로 나눠 걸으며 차게 식은 구역질을 바닥까지 다 긁어 내뱉어야만 집 문을 활짝 웃으며 열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누구든 상관없으니 지금 당장 날 죽여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산뜻하게 집 문을 열면 나는 또다시 찾아올 밤을 피할 도리를 몰라 몸 시리게 그저 기다렸다.
나름대로 해결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게, 망망대해에서 뭐든 잡고 싶었던 게, 피해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든 받아내려 아등바등거렸던 게 '이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아플 것이 분명했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셀 수 없는 되감기를 반복했다. 작은 아이가 더 작아졌다. 현재 지금까지 그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되돌려도 기억이 없다. 대신 나에게 하나만이 강렬하게 남았다. 그 후 즉각적으로 묘하게 평온해지던 신기하고 기묘한 느낌. 작은 구멍 없이 바글바글 끓며 부풀던 몸이 한순간에 차갑게 사그라들며 늘어지는 기괴하게 말끔한 감각.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순간들이, 영겁 같던 밤들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심장박동과 함께 편안해졌다. 그러면 가볍게 잠에 들 수 있었다.
어리석음을 본다. 흐릿한 그 흔적 끝에 앉아있는 그때의 나를 낯익게 맞이해본다. 세상에 이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라고. 세상에 이보다 나약한 짓은 없을 거라고. 외부의 틀린 것으로 인해,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긴 인생을 바라봤을 때 한치도 되지 않을 순간들로 인해, 내 다채로운 빛깔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할 하찮은 것들로 인해 내가 나에게 상처를 냈다. 작아진 나에게 날 선 상처를 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상처를 줬다. 반갑게 맞이하는 나를 바라보는 네가 한스럽게 어리석다. 그래서 애타게 안쓰럽다.
빅토리아는 실비아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실비아의 그저 시도에 불과했을 행위가 결국 결과까지 도달한 것이다. 10년마다 한 번씩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던, 목적지가 어딜지 모를 기차에 탑승하다 중간에 어김없이 하차하던 실비아는 이제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떠나버렸다. 그러나 극은 이렇게 끝내지 않는다. 실비아는 떠났지만, 짧은 이야기를 남긴다.
익숙한 기차에 올라탄 실비아는 아까부터 열심히 빨간 목도리를 딴다. 그렇게 한참을 손수 따며 완성한 목도리를 실비아는 곁에 앉아있던 작은 소녀에게 둘러준다. 누구로 인해 탑승을 했는지, 어디로 가려고 앉아 있는지 모를 작은 소녀에게 잃어버리지 말라는 듯이, 너는 절대 추위를 모르길 바란다는 듯이, 혹여나 극심한 추위가 부닥쳐도 결코 휩쓸리지 말라는 듯이 보송보송한 목도리를 꼼꼼하게 둘러준다. 작은 자신에게 목도리를 둘러준다. 빅토리아가 실비아에게 그랬듯이 실비아도 소녀에게 그러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이라는 걸, 내가 나를 파괴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는 걸 그때의 휘청거리는 내가 사선에서 깨달았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올곧게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 아닌 위태로운 경계에서 흔들리며 알아봤으니 살고 싶었던 것을 죽고 싶었던 걸로 봤던 것이다.
간절히 죽고 싶었던 것은 간절히 살고 싶었던 것이고, 날 죽였으면 하는 마음은 나를 살려줬으면 하는 소리였다고. 사실은 내가 나를 파괴하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더 쉽다고. 그래서 가장 어리석고 가장 애달픈, 어린 나에게 묻고 답한다. 죽기 위해 살았고, 그렇게 죽음을 바랐고, 결국 그 끝에 도달한 실비아가 작은 소녀에게 추위 대신 목도리를 둘러주는 정답 같은 상상처럼.
넌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은 거라고.
가끔 매번 같은 장면, 같은 시나리오의 짧은 상상을 해본다. 실비아의 남은 이야기처럼, 긴 영화의 엔딩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가고 난 다음 나오는 에필로그처럼. 그때의 상처 많을 나와 나란히 그네에 앉아 있는 유치하고 진부한, 그래서 그만큼 웃긴 상상을.
그렇게 짧은 망상을 하다 보면 저릿한 마음에 목에 눈물이 고이고 볼에 웃음이 담긴다. 그 아이는 항상 말이 없다. 그런 아이의 옆에 나란히 앉아서 지금의 내가 말을 건다. 그렇게 내뱉는 말들은 웃기게도 하나하나 반질반질 빛나는 뽀얀 조약돌이고, 잎사귀들이 작게 빚어 낸 따뜻한 바람이고, 물 표면에 여유로이 유영하는 햇살 조각이다. 하나같이 향긋하고 모난 곳 없이 예쁜 것들뿐이다. 그게 참 웃기다. 그래 놓고 머쓱한 몸짓으로 그 아이를 안아주고 작은 등을 토닥인다. 내 품에 안긴 그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무슨 말을 해줄지, 본인을 안아주는 나를 안아줄지, 나의 등을 토닥여 줄지, 항상 나의 상상은 여기까지다. 잠깐의 나른한 낮잠이 끝날 무렵 그 옅은 경계에 걸린 틈에 꾸는 꿈처럼, 그 상상에 흠뻑 빠져 있다가 번뜩 정신이 들면 우습게도 그 아이에게 도리어 힘을 얻는 것을 느낀다.
멍한 표정으로 그네에 주저앉아 있는 그 아이에게, 본인에게 주어진 작은 몸뚱이를 스스로 해치지 못해 안달이 난 그 아이에게,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는 방법을 몰라서 '나'라는 빈칸을 채우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 겨우 넘긴 하루 끝에 밀려드는 밤이 두려운 그 아이에게, 넘치는 생각에 잠을 구겨놓을 공간도 없는 그 아이에게, 사실은 살고 싶어서 죽으려고 했던 그 아이에게 오히려 다음 걸음을 힘차게 내딛을 기운을 얻는다.
사람은 생각보다 유치한 것에 쉽게 힘을 얻는 법이니까. 한 번쯤 되게 힘들 때 액션 히어로 만화나 영화의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초능력을 발휘한다며 기운을 낸 적이 있는 것처럼. 나는 그 아이에게 그런 힘을 얻는 게 아닐까 앙다문 입술 사이로 울컥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런 힘을 이미 그 아이는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온전히 느끼고 있기에, 그 아이로부터 나는 여전히 간절하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