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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Apr 03. 2022

나의 별 것 아닌 별것

원활한 배변은 건강에 중요합니다

나는 글을 왜 쓸까 생각해본다. 뭔가 근사한 목표가 있어서 혹은 재능이 있어 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나로서는 별 것 없는 배설에 가까운 행위다.


어디 가서 내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 못 된다. 말 수가 없는 편은 아닌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대한 반응이나 가벼운 농담 따먹기는 잘 하면서도 정작 나에 대한 이야기는 잘 풀어놓지 못한다는 거다. 자리에 함께 한 인원이 많아질수록 더 그렇다. 왜인지 여러 명 앞에서 아무도 묻지 않은 내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늘어놓자니 괜스레 낯간지러운 느낌이라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달까.. 흡.


그렇다고 생각 없이 사는 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떨 땐 기가 찰 정도로 단순하다가도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생각들이 불어나서 결국 허덕이며 배출구를 찾는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거나 감정을 느꼈을 때 이를 토해내듯 일기로 썼고 이렇게 해온 지 약 20년이 되었으니 찌끄리듯 쓴 일기도 글이라고 후하게 쳐준다면 꽤나 오랫동안 무언가 쓰기는 써온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쓴 글들을 쭉 봐오면 대부분 별 것 아닌 내용들인데다 어우 이걸 어쩌냐 싶게 도저히 못 읽어줄 내용도 많지만, 내가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당시에는 분명 진심이었을 수많은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흐려지고 희석되어 가지만, 그 순간의 마음들은 활자로 또렷하게 남아 그 자리에 살아서 나의 성장 기록이자, 다짐이자, 앞으로 쓰고 생각할 것들의 방향성이 되어준다.


얼마 전 장욱진 화가의 <나무>라는 작품을 보게 됐다. 그림체는 단순했지만 다정했다. 그는 굉장히 무뚝뚝해서 생전 가족들에게 애정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담아 평생 집과 가족을 그렸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가족에 대한 마음이 컸지만 그 사랑이 그림을 통해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달랐던 것뿐이다. 그는 그렇게 그림을 통해 속에 있는 마음들을 꺼내 두었다.


(왼) <나무> / (오) <가족> , 장욱진 화가 작품



누구에게나 속에 있는 것들을 배설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것이 글이 됐든 그림이 됐든, 그 형태는 다양하겠지만 어찌 됐든 밖으로 토해내고 또 채워가며 사는 것이 건강하니까. 지금 쓰는 이 글도 별 것 아닌 나의 별 것이 되겠지. 오랜만에 예전 일기나 읽어봐야겠다.




'겨우' ..!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많이 많이 나누자.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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