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솔로가 되긴 틀렸어
날도 좋은데 집에만 있기 아까워서 밖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솔로가 된 나와 요즘 가장 잘 놀아주는 친구(역시 솔로, 최고의 위안)와 등산을 가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배낭을 들쳐 메고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아침부터 부지런한 사람들이 대체 왜 이렇게 많은 것이며 언제 벚꽃은 이렇게 흐드러지게 폈으며 언제 이렇게 더워져서 반팔만 입어도 될 날씨가 된 거야..?! 그나저나 재택근무를 핑계로 집에 틀어박혀서 내가 보기 전에 벚꽃과 개나리들이 얼른 다 져버리길 바랐는데. 계획에 실패해버렸다. 만개한 꽃들을 보고 말았어..
애써 사람들로 눈을 돌려보니 이 세상 커플들이란 커플들은 죄다 밖으로 쏟아져 나온 모양새다. 열받는다. 아직도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다들 밖에서 뭐 하는 거야.(물론 나도 밖.)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서 본인 상황 달라졌다고 같은 풍경도 이렇게 다르게 대한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러고 산다. 고상하고 우아하게 나이 들긴 틀려먹었다.
더 열받는건 그럼에도 예쁘다는 거다.. 그 사실에 열받아하면서 또 찍었다. 예쁜 걸 어떡해. 그런데 사실 여기서 제일 특별한 포인트는 바로 벚꽃나무 아래의 저 바닥 그림자다. 물에 일렁이는듯한 느낌에 보고 있으면 마음도 일ㄹ.. 이고 뭐고 열받는다.
등산하는데 진달래가 또 예쁜 거다.. 휴 열받아. 이러니까 커플들이 다 나오지. 근데 예쁘긴 하다. 우리도 찍을까?ㅎ 해서 열받아하면서 또 찍었다.
우리가 싸왔던 올망졸망한 간식들. 근데 다 필요 없고 산 입구에서 샀던 얼린 믹스커피가 짱이었다. 이거 없었으면 정상 못 올라갔다. 최고의 당 충전.
너무 심하게 좋은 날씨와 예쁜 꽃들에 열받아하며 등산을 마친 후 야외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깍두기만 안주로 해서 먹어도 충분히 가득 찬 맛.
마침 하고 있던 정찬성 선수 경기를 보며 먹었다. 사실 옆 테이블에서 틀어두신 건데 몰래 대놓고 같이 봤다. 열받던 우리의 심정에 잘 맞는 콘텐츠였다.
열받는 김에 아주 대놓고 벚꽃을 쳐다보며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라면과 맥주로 2차를 했다. 흩날리는 벚꽃이 어찌나 열받든지.. 그러나 훌륭한 한상 차림이었다. 방금 먹은 막걸리를 라면으로 해장하며 맥주를 마셨다.
요즘 아주 날씨 좋고 꽃피니까 열받는다. 빨리 비가 와서 꽃들이 다 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또 이 짧은 시기에 잠깐 왔다 가는 꽃들이라 열받아하면서도 애틋해져서 자꾸자꾸 눈에 담게 되고..
오락가락하며 산다. 이렇게 날씨 좋고 꽃피는 계절에 혼자 지낸다는 건 정말 보통 예삿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또 이 계절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도록 야외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여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