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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Jun 18. 2023

낭만적으로 산다는 것  

평생 부리고 싶은 작은 사치

낭만. 살면서 단 하나의 단어만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게 낭만일 것이라고 자주 생각한다. 살면서 시기에 따라 중요시하는 가치는 달라지겠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낭만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꽤나 오랫동안 해왔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우리 엄마는 내가 매번 낭만'타령'하는 것을 싫어한다. 너 그 낭만타령 그만 하고,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지 그런 거나 고민해 봐.


어떻게 보면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현실 모르는 철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배부르니까 낭만 '타령'을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도 있을 거고. 그런 뾰족한 시선들 속에서도 여전히 나는 낭만이 소중하고 이를 잃게 되는 것이 두렵다. 낭만함유율이 0%가 되는 순간 내 삶은 시들어 죽게 되고 말거야. 마치 빛바래고 퍼석거리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없이 손 안에서 가볍게 바스러지는 삭은 종이 조각처럼.


낭만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풍경이 아름다운 어느 유럽에서 만난 사람과의 하룻밤 사랑, 이런 걸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가 처음 낭만이라는 느낌을 접했던 것도 영화 <비포 선라이즈> 나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사랑 같은 것이었으니까. 어릴 땐 그런 줄 알았다. 파리가 낭만의 도시라길래, 파리만 가면 어느 잘생긴 남자와 갑작스레 합석해서 와인 한잔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지금의 내가 쥐고 있는 낭만은 그보다는 현실과 가까워졌다. 원체 낭만이라는 것이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는,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영역에 해당되지만 이 가치를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나름 현실과 이리저리 타협해서 나의 손으로 잘 쥐고 있을 만한 모양새로 만들었달까. 그렇게 빚은 내 낭만의 핵심은 바로 삶에서 '재미'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일상에서든 일하는데 있어서든, 핵심 기준을 재미로 두는 식으로. 이 역시 여전히 사치스럽지만.


내 기준 낭만적으로 사는 사람 중 하나는 노홍철인데, 얼마 전 그가 유투버 곽튜브와 벤엔제리 아이스크림 본사를 방문한 영상을 봤다.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는데 알고 보니 "재밌지 않으면 왜 해(If it's not fun why do it?)"라는 근사한 모토를 가진 브랜드였다니. 그리고 창립자인 벤과 제리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그 재미를 여전히 추구하고 있었고. 멋있다. 낭만있다. 노홍철이 부러운 투로 던진 말을 계속 곱씹게 됐다. "낭만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이들처럼 오랫동안 낭만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 내 주위를 떠올려봐도 그렇다. 오랫동안 열심히 산 사람은 많아도, 오랫동안 낭만이 있는 사람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시덥잖아서 안 쳐도 그만일 장난을 치는 것, 안 사도 될 꽃다발을 굳이 사서 소소하게 안겨주는 것, 월급보다 재미를 우선시하며 직업을 선택하는 것. 세상 비효율적이지만 즐거움을 위해 조금 돌아갈 마음의 여유를 부리는 것. 이걸 일상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내 낭만이자, 이 낭만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도 내 낭만이다. 기왕 쓸데없는 고민을 할 거라면 어떻게 살까, 보다 이 낭만을 어떻게 오래도록 유지할까, 하는 고민을 해보는 편이 더 재밌겠다.



https://youtu.be/tQNX8RG-olI

이 시대 건강한 낭만의 산 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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