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늘 겨울을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가을이 주는 그 특유의 티 없음, 맑음, 푸름 때문에 겨울 못지않게 가을이 좋았다.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아무래도 가을이 좀
더 특별하고 기억 속에 사진처럼 각인되어 있는 과거 몇몇 장면들에도 많이 녹아 있다. 마치 배경처럼.
아주 어릴 적 외할머니와 함께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지역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는 볼 일이 있어서 그곳에 가던 차에 나를 함께 데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아주 장난스러웠고 괜히 기분이 좋아서 할머니와 걸음을 맞추지 않은 채 앞뒤로 뛰어다녔다. 그때 그곳이 어디였는지, 왜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도 않고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장면이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하나의 상징처럼 떠오르는 그런 것일 뿐이다. 그때는 깊은 가을이었고, 거리는 온통 노란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혼자 뛰어다닌 이유는 그뿐이었다. 그 장소와 시간 자체가 좋아서.
그런데 가을은 내가 느끼기로 모든 계절 중 가장 맑음이란 단어와 잘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쓸쓸한 느낌을 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과거 어떤 순간에는 그저 단풍 냄새와 높은 하늘의 청량함만으로 모든 것이 좋았다면, 어느 순간엔 쓸쓸함과 고민을 더욱 짙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관계와 미래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던 대학생 때와 대학원 시절. 그때의 가을은 그런 것이었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하던 어떤 고뇌가 있든 간에 봄과 여름은 그럭저럭 무던하게 지나갔던 것 같다. 마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살아갔듯이. 그런데 가을이 오면 무언가가 달랐다. 봄이나 여름이었다면 혹은 겨울이었다면 그저 흘려보냈을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무엇이 괜히 그렇게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을까. 이렇듯 단풍이 들고 가을이 서 있는 모습은 볼 땐 좋기도 했지만 불필요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가을, 특히 늦가을이란 것은 사람의 마음을 급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한창 가을일 때의 노란색과 붉은색 잎은 마치 생명을 가득 품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색들이 점차 변하게 되면서 괜한 여운을 남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잠시 동안 붉게 물들었던 것이 메마른 잎으로 곧 떨어지게 될 거라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어서일까?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을 오래도록 붙들고 있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젊음을, 누군가는 자산을, 누군가는 자기가 가진 소중한 물건을. 그런데 늦가을은 마치 그런 것은 불가능한 것이란 것을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이 급해지듯 점차 무언가가 끝나가는 것 같은 느낌은 그래서였나 보다.
기후위기로 인해 가을은 이제 사실상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 내게 가을은 더 이상 마냥 기분 좋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쓸쓸함을 주는 것도 아니다. 늦가을의 모습처럼 점점 짧아지다가 언젠가는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마치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것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