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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영 Aug 17. 2018

4월의 눈보라

눈 덮인 세상은 영문도 모른 채 더없이 고요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눈보라가 쳤어요.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는 혼잣말을 하고 있지만, 선거에 출마한 사람처럼 표정만큼은 결사적이었다. 그의 입모양에 시선이 집중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눈보라 때문입니다. 


사내가 한 번 더 말했다. 이번엔 나를 의식이라도 한 것처럼 낮고 정확한 발음이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엔 생기가 돌았다. 나는 귀찮은 생각이 들어 우동그릇에 눈동자를 묻었다.


눈안개가 지독하군요. 


사내의 말에 다시금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포장마차 안은 우동과 오뎅의 국물에서 비롯된 연기가 자욱했다. 습하고 불결한 공기였다. 사내의 말로 포장마차는 완전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사내의 환상에 갇힐 것 같아 바람이라도 쐬어볼까 문틈 사이를 간신처럼 노려봤다. 바깥은 눈보라 대신 벚꽃잎만 한들한들 흩날리고 있었다. 


4월에 눈보라 타령이라니. 사내는 미친 게 분명했다. 겉옷이 있어야 마땅한 날씨에 사내는 목이 다 늘어난 후줄근한 회색 면티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거기다 소지품이라곤 가죽이 반 이상 벗겨진 반지갑, 깨진 시계, 알이 큰 선글라스뿐이었다. 사내의 주변엔 어느 것 하나 정상인 게 없었다. 슬몃슬몃 그를 관찰하던 나는 그와 완벽한 타인이 되어 홀로 소주 반 병을 비워내고 있었다.


아내가 죽었습니다. 


예? 


예상치 못한 순간 무자비하게 던져진 덫처럼 나는 사내의 뜬금없는 고백에 하염없이 걸려들었다. 


아이도 죽었죠. 


딸꾹질이 터져 나온 바람에 나는 여전히 건너편에 앉아있는 사내와 눈이 맞았다. 이후로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대화의 흐름이 이어질 게 뻔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느릿느릿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사내의 표정이 섬뜩해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엔 땀이 흥건히 젖어 들어 질척거렸다. 딸꾹질은 목구멍 언저리를 간간히 막고서 히끅히끅, 목이 졸려 죽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틀 전 폭설 때문이었지요. 


이틀 전이요?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리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이틀 전이라고 했습니까? 


4월에 눈이라니. 

정신 나간 소릴 하는 그 사내는 내 질문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시간은 악의를 품고, 침묵 속에 흘렀습니다.  눈 덮인 세상은 영문도 모른 채 더없이 고요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덕에 해가 완전히 지기 전 까지는 영원히 정오에 머물러 있는 법인데 눈보라가 다 망쳤습니다. 해와 구름을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으로 집어넣곤 어둑해진 하늘을 나몰라라, 무책임하게 시간을 헤매도록 두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틀 전이라고요? 


나는 거듭 그의 아내가 죽은 시간을 확인했다.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이번 주 내내 전국이 맑은 날씨였다. 눈보라가 다녀간 길목엔 늘 상처가 흔적처럼 남았으므로 내가 모르는 사이 다녀가는 건 명백히 불가능했다.


수술 동의 전화가 온 게 12시였는데, 제가 도착한 2시 47분까지도 아내는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폭설 때문이었죠. 폭설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한 어느 의원의 아이가 우리 아이 대신 태어났습니다. 물론 새치기 사례금은 톡톡히 받아뒀습니다. 허허, 우습지 않습니까. 새치기 사례금이라뇨. 두 사람이나 죽었는걸요. 


사내의 구슬픈 웃음소리가 고요한 눈보라 사이를 헤매는 것처럼 분분히 흩어졌다.


이게 다 빌어먹을 눈보라 때문입니다. 


사내가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사내는 왼발을 끌었다. 깨진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장님인 양 선글라스를 끼우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겨울처럼 포장마차를 나간다. 사내가 연 문 틈서리로 꽃잎 하나가 사뿐하게 날아들어와 바닥에 앉았다. 나는 그것이 눈송이처럼 녹아내리는 것을 상상하다 퍼뜩 사내의 뒷모습을 마저 보았다. 


사내의 윤곽은 벚꽃, 아니 어느덧 눈보라 속에 흐릿해져 있었다.


폭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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