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영 Dec 26. 2018

나는 이중인격일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


얼마 전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잠시 시간이 남아 중고서점에 들렀다. 서점의 각 코너를 한참을 어슬렁거리다 <인연>이란 수필집을 집어 들었는데, 언뜻 읽는 문장만으로 기분이 상쾌해졌다. 처음 가보는 낯선 지역의 공기, 중고 서점만이 주는 낡고 온화한 분위기가 날 묘하게 달뜨게 했다. 굳이 덧붙이자면 피천득의 <인연>은 가장 첫 장에 나오는 머리말부터 애틋함이 느껴졌고, 편안하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 꾸미지 않아서 더 예쁜 문장들이 내 머릿속까지 따뜻하게 정화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똑같은 수필집을 새 걸로 샀다. 중고 서적보단 새 책을 더 아낄 것 같은 마음에 부렸던 욕심이었다.

하지만 표지가 다른, 손때가 없는, 같지만 다른 책을 들고, 일전에 느꼈던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없어 얼마 가지 못해 책을 덮었다. 


이전에 나에게 닿았던 문장들은 같지만 다른 것들이었다. 

나는 생각지 못한 이질감에 혼란스러웠다. 같은 문장을 장소만으로 이렇게 다르게 느끼다니. 

시간 간격이 있던 것도, 그 사이 심리적 변화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 불현듯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상황에 따라 사람은 달라지잖아요?
제가 여기선 좋은 사람일지라도,
어딘가에서 나쁜 상사일 수도 있죠.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사람의 본성이 동전의 양면이듯, 모든 사건과 인과관계에서 오는 이중성이 존재하듯 

우리는 같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좋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없으면(나는 이걸 '충전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을 만날 때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덩달아 힘겨워진다. 그래서 보통 땐 집순이로서 충실하게 살지만, 가끔 갖는 만남에선 누구보다 활발한 아이가 된다. 수다를 좋아하기도, 과묵하기도 하고, 활발하기도, 조용하기도 하다. 


그럼 난 이중인격일까?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격이 정반대인데, 난 두 분을 다 닮았다. 어머닌 감성적인 편이고, 아버진 이성적인 편이다. 어떤 상황에선 현명하지만, 사람을 잃을 만큼 냉정하게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데, 어떤 상황에선 감정을 깊숙이 교류하고, 결과를 그르칠 각오까지 하고 감성만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같은 상황일지라도 어떤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언행이 바뀐다. 


그럼 난 이중인격일까?


편애나 관대함도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세워둔 잣대는 움직이지 않지만, 가끔은 감정에 따라 선의 위치, 즉 '기준'이 잠시 옮겨졌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편애와 관대라고 부른다. 이런 순간이 잦은 사람을 우리는 더러 '일관성 없는 사람'이라고 욕하지만, 알게 모르게 행해지고 때론 비밀스럽게 옮겨가는 이 '기준'은 서로 간의 친밀한 표현이 되기도 한다. 


그럼, 사람들은 이중인격일까?


상황에 따라 사람의 평가가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기준도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언행도, 성격도 바뀌고, 상황에 따라 '사람'도 바뀐다. 우리는 같은 사람인데도 어느 시간에, 어느 장소에, 어느 사람과 함께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이다. 


그럼 우리는 이중인격일까?


정답은 없다. 

이 또한 어떤 상황엔 '인간의 이중성'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엔 그저 '양면성'이 될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은 자주 정답 없는 일에 결과를 내고 싶어 하지만, 인생에 모든 일이 명확한 해답으로 귀결될 순 없다.

이럴 땐 그저 나의 신념에 맞는, 나만의 판단만이, '나만의 대답'을 내놓을 뿐.




매거진의 이전글 면접에선 솔직하면 안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