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을 일삼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삶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비난을 일삼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삶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나는 가치관이 확고했다. 머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굳어지는 거라는데, 나는 늙을수록 약해지는 것처럼 머리가 말랑해지고 있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잦아지기 때문이다.
가치관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아직 내 안에 자리 잡고 있긴 하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내가 맞아.”라고 할 자신감은 없어진다. ‘인생에 정답이 있나’하는 생각을 하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생각이나 의견에 관해서는 누가 옳고 그름이 없고 저마다의 타당한 이유를 갖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도덕, 해를 가하지 않는 윤리의 선만 있을 뿐이다.
아니, 그러나 이 순간에도 그 윤리적인 선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름대로의 ‘윤리’라는 것도 기준이 다 달라 싸운다고 말한다면 나는 또 할 말이 없다. 결국 또 말랑한 의견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지 못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은 대부분 비난을 일삼는데 ‘저 사람은 이런 점이 끔찍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머리에 뇌가 없나.’같은 말들이다. 그러나 그런 비난을 일삼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삶을 사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들은 되도록 합리화를 잘하고, 비난은 누구도 들을 정도로 크게 하며 그 비난을 발판으로 자신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먼지 털어 안 나오는 사람 있겠냐.’는 말을 어느 정도 신빙한다. 이럴 때 써도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에게는 소비하는 삶이 비난 대상이 되기도, 누군가에게는 저축하는 삶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까. 그렇게 보면 ‘비난 받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비난을 하기 전에, ‘나는 단 한번이라도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나.’ 생각하면 분명 비난은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