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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에 느낀 아버지는 보고픔이었어요

신경숙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고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다


-본문 중에서




나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딸을 잃고 모두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철저히 고립된 채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암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나시고 대문 앞에서 아버지가 울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J시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와의 의도치 않던 동거가 시작되며 집안을 살피다 폐가의 방 안으로 들어서자 먼지 쌓인 나무 궤짝 안에서 편지 뭉치들을 발견했다.

큰 오빠가 파견근무로 리비아에 나가 있었을 때 주고받았던 편지였고 아버지는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아들을 먼 이국땅 보내 고생시켜 미안하다고만 연신 적혀 있었다. 난

편지에 적힌 아버지의 생각들을 정리하며 글을 쓰기로 했다.

열네 살의 아버지는 이틀 사이에 부모를 전염병으로 잃으시고는 일찌감치 배워둔 쟁기질 덕에 외가에서 쥐여준 송아지 한 마리를 홀로 키우며 가리는 것 없이 죽어라 일만 하셨다. 한국전쟁을 거치고 소값 폭락으로 인한 시위에 앞장서기도 했으며 돈 벌러 간 서울에서 겪은 4.19 혁명을 목도하고 또 살아낸 아버지는 자식 여섯을 위해 힘들어할 새도 없이 일어서야만 했다. 그렇게 정신을 부여잡으며 사셨던 아버지의 기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새벽녘 텔레비전 소리에 깬 나는 아버지가 안 계신 걸 알고 집 안을 찾아 나서다 구석진 폐가 방 안에서 울고 계시던 당신을 모셔와 다시 잠자리에 드시게 했는데 다음날이면 기억을 못 하시고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셨다.

어스름한 밤 기운이 들 때면 어김없이 사라졌다 울고 계시는 아버지를 목도하는 날이 연일 이어졌고 8년 전 돌아가신 고모가 요즘 통 집에 오시질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신다거나 마당 한편에 묻어둔 앵무새 참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 하신다.

약사인 동생에게 물어보니 무리한 치과 치료와 수면장애가 일으키는 섬망 증세일 수 있다며 병원에 다녀오라 한다. 의사는 낮 시간을 활용해서 산보를 하거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권유했다. 눈물은 우울감과 결부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실컷 하고 나면 나아지기도 한다고. 그리곤 걱정에 앞서있던 나에게 아버지는 치매 검사도 받아 보셨다며 당신에 대한 염려를 거두라 하셨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벌써 육 년이 흘렀구나.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면 그아도 갈 길을 못 가고 헤맬 것잉게...

언진가 소 새끼 한 마리가 젖을 빨다가 미끄러져 다리가 분질러지더니 주저앉아 걷는 법을 잊어버리고는 앉은뱅이가 되더라.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면 이 말을 안 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본문 중에서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질끈 감았다.

아버지는 당신 걱정을 하는 나에게 오히려 딸을 눈앞에서 잃은 나를 위로하고 계셨다. 그러고는 아버지는 글 쓰는 일은 잘 돼가냐며 가족들 사이에서 금기시되어 있던 딸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내게 조용히 말을 꺼내신다.



매일이 죽을 것 같어두 다른 시간이 오더라.

..

봄에 모판에 볍씨를 뿌릴 때는 이것이 언지 자라서 심고 키워서 추수를 하나 싶어도 하루가 금세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본문 중에서



수면장애로 인한 불안과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며칠 사이로 날마다 나를 불러 앉혀두고 형제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을 적은 종이를 주거나 간간이 모아두었다며 통장 네 개를 펼쳐 보이는가 싶더니 마당으로 나가 낡아서 더는 못 입는다며 아버지의 옷들을 하나둘 불태우신다.

아버지와 함께 누운 벽 위쪽으로 형제들의 학사모 사진들이 나란히 걸려 있고 비어 있는 자리에 나의 사진도 걸어야겠다, 다짐했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의 자랑거리였는데 나는 2년 제 전문대를 나왔단 이유로 액자 거는 것을 반대해 왔지만 이젠 그 소원을 채워 드리고 싶다.







전개가 빨랐던 [엄마를 부탁해]와 달리 이 책은 쉬이 집중이 안될 정도로 초반에 너무 무채색이었어요. 하지만 장을 넘길수록 지루함을 언제 느꼈나 싶게 따뜻함으로 가슴이 울컥이게 하는 거예요.

작가님은 격변의 시대에 겨우 목숨만 살아남아 그토록 많은 일을 해내고도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고 하는 이 말수 적은 익명의 아버지를 쓰는 동안 쏟아져 나오는 순간순간들을 제어할 수 없었다고 해요. 그랬어요.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이런 아버지가 존재하기는 할까? 하는 의문을 가졌어요.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은 가부장적이고 큰 소리만 내시는 걸로 많이 부각되어 있잖아요. 돌이켜보니 저의 아버지도 자식 다섯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무게가 왜 없었을까 싶어요. 언제 화가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함의 연속이었던 것 같은데 일곱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밥상에서 웃음의 물꼬를 틔워주신 것도 아버지였기에 부드러운 단면이 분명 존재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계실 때 잘해 드리라고 하잖아요.

어느 책에그러더라고요. 누군가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나면 아무리 잘해 드렸어도 못다  사랑만 떠올라 후회하기 마련이라고,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모두와 편하게만 지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맞는  같아요.

오늘이 지나고 내일을 맞이하면 반드시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하듯이요.

그러니 너무 뭐든지 잘하려고 아등바등 살지 않기로 해요.


계절마다 맞이하는 감정에 따라 읽히기 좋을 소설책이었어요. 가을이 가기 전 기억에서 가뭇해진

[엄마를 부탁해]를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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