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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게 내가 함께해 줄게요

루리 [긴긴밤]을 읽고








"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로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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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인 노든이 태어나 마주한 곳은 코끼리 고아원이었다.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머무를 것인가, 바깥세상을 나가 혼자 독립할 것인가에 대해 선택의 날이 주어졌고 노든은 코끼리가 아닌 자신과 같은 뿔이 있는 코뿔소 무리들을 만나고 싶어 떠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든은 아름다운 뿔을 가진 코뿔소를 만났고 곧 딸이 태어나 가족이 만들어졌다. 둥근달이 높게 뜬 밤 인간들에 의해 아내와 딸은 총에 맞아 죽게 되고 노든은 파라다이스 동물원에 갇히게 되며 앙가부라는 코뿔소 친구를 만난다. 노든은 인간들을 향한 복수심에 늘 탈출할 기회를 엿보았고 앙가부가 도움을 준다. 드디어 철조망을 뚫고 나가기로 한 날,

또다시 앙가부의 죽음을 맞닥뜨리며 좌절을 한다.


펭귄 우리에서 버려진 알을 데려다 키운 치쿠와 윔보.

하늘에서 전쟁이 나던 날 유일하게 살아남은 치쿠는 양동이에 알을 넣어 노든과 함께 도망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쿠는 죽고 노든의 앞발 틈에서 나는 태어났고 노든에게 살아남는 법에 대해 배웠다.

살아남는 게 그리 어려운 일 같지 않았는데 노든은 아내와 딸, 그리고 나의 두 아빠 치코와 윔보 덕분에 살아남은 세상인 만큼 그들의 몫까지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노든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살아 냈는데 어느새 나 스스로가 살고 싶어서 악착같이 살고 있는 나를 보면서 노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바다를 향해.







"

기분 좋은 얘기를 하다가 잠들면,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 정말이야.




"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

언제나 그랬다. 노든은 옛날 기억에 사로잡힐 때마다 앞으로 걷고 또 걸었다. 노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불행한 코뿔소인데 제멋대로인 펭귄이 한 마리씩 곁에 있어 줘서 내가 불행하다는 걸 겨우 잊고 사나 봐. 아까는 미안했다. 자, 이리 와, 안아 줄게. 내일은 어느 쪽으로 가면 바다가 나올 것 같아? 펭귄의 감으로 얘기해 봐.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짓밟히기도 하면 하염없이 무너질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땐 그 어떠한 자력으로도 일어나 지지 않을 때가 있고요. 

복수를 꿈꾸는 노든에게 함께 모의를 주도했던 앙가부가 있었던 반면에 이름 없는 펭귄은 복수하지 말고 자기랑 같이 살자며 소리 없이 눈물을 보이며 작은 몸으로 그를 끌어 안기도 해요. 그런 거 아닐까요.

더불어 산다는 말.

고아원에 오래 남아 있던 할머니 코끼리가 귀가 없으면 귀가 있는 사람 옆에 붙어사는 게 순리라는 것처럼 우린 연대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나를 힘들 게 하는 사람에겐 이름 없는 펭귄처럼 내 근처에 오지 말라고 똥 한 번 찍 뿌려 주는 거죠. 그리고 내 곁에 있는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는 거예요. 정말 힘들 땐 조금만 기대고 싶다고 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른쪽 눈을 다쳐 잘 보이지 않는 치쿠에게 그 오른쪽에서 치쿠가 중심을 잡고 다른 펭귄과 부딪치지 않도록 잘 걸을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준 윔보처럼 꼭 고마운 사람 한 명씩은 있을 거예요.

버티고 나아가면 우리도 꼭 푸른빛의 바닷가에 도달해 있을 거고 그땐 잘 살아준 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거죠. 


책이 두껍지 않아 아이들에게 주려고 골랐거든요.

술술 읽혔지만 문장 하나하나마다 그냥 흘려 읽을 수 없었기에 찬찬히 또 글을 새기며 읽었어요. 그래서 생전 해보지 않았던 필사를 하게 됐고요.

슬프고 암울했지만 희망은 꼭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고마운 책으로 비단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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