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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아니, 포기할 수 없어요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본문 중에서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멈추고 제주로 내려간 인선이 목공일 하다 손가락 절단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며 내게 오라고 했다.  분에  번씩 바늘을 찔러 고인 피를 빼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반나절 보고 있자니 대뜸 자신의 집에 있는 앵무새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며 제주도에 지금 내려가 주라고 부탁한다.

아니 강요로 들렸다.

인선의 어머니 상태가 나빠지면서 제때 연락이 안돼 소원해졌던 관계였다. 나는  거절을  하고 제주도로 향했는지 알지 못한  폭설이 내리는 눈밭을 걸으며 기억을 더듬어 빛줄기 하나 없는 길을 걷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가 시야를 가리며 자꾸만 기억 너머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학살에 대한 책을 집필한 이후에 꾸었던 꿈이었다.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가로질러 드디어 인선의 목공방에 도달해 새장 문의 잠금쇠를 들어 올려 보지만 바로 울어야 할 새가 움직임이 없다.

상자에 담아 처마 아래 나무 옆에 묻고는 잠시라도 쉬고자 누었는데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쉬이 잠들지 못했고 인선의 영화 속 유골 수백 구가 묻힌 구덩이 영상이 자꾸만 나를 뒤흔든다. 오후 네시.

잠에서 깬 나는 새의 우는소리를 들었다. 분명 어젯밤에 묻었던 새가 인선의 집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냉장고 문을 열어 새의 주식을 챙겨주고 나도 먹으며 생각했다. 이건 꿈일까?

의심하는 찰나의 순간에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할 인선도 내 눈앞에 있다.

상처 없이 깨끗한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화목 난로에 불을 지피고 둘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인선이 말했다. 우리가 제작하기로 했던 프로젝트 제목은 

'작별하지 않는다'라고.

그러고는 이렇게 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칠십 년 전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그에 희생된 그녀의 가족사를 듣게 됐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칼질하다 손을 베여 피를 본 날엔 그때가 생각난다며 하시던 말씀은 사방에서 날아든 총탄에 가족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가는 모습을 목도하고도 슬퍼할 새도 없었다고 했다. 강제 수용되어 십오 년을 감옥에서 보내다 총살됐다는 열아홉 살의 아버지가 계셨고 유일한 생존자였던 오빠마저 소식이 끊기자 언니와 엄마는 오빠를 찾아내기 위한 지난한 투쟁과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정전이 되어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이어졌던 인선과의 대화는 서서히 꺼져가는 불꽃처럼 모든 게 조용히 사라지며 다시 어둠으로 돌아왔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이야기였어요.

학살 이후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한 살고 있는 자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책에 남겨진 기록들은 언젠가 설민석 선생님께서 제주도에서 강연하셨던 그날의 일들이 뒷받침되어 이빨이 부딪히며 떨려올 정도의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엄마 정심은 그리고 생존자들은 사력을 다해 실종자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둠을 꾸역꾸역 꺼내어 헤집고  몸서리를 치고 다시  기억을 깨우기를 반복하면서요. '작별하지 않는다' '포기할  없다' 

립니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만큼 옛이야기를 꺼내는 엄마 정심이 못마땅한 인선이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들어줍니다.

주인공 경하는 사랑하지도 않는 '' 찾아  힘겨운 사투를 벌여가면서 제주도 집을 찾아가고요. 본인도 이해할  없는 일들을 행했던 모든 것이 결국에는 사랑으로 묶여 있는 사람과 삶이었구나 느껴져요.

한 가지로의 해석만이 가능한 '사랑'이라는 단어로 치부해 보지만 책에서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찾고자 하는 간절함, 만날 것 같은 희망과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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