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중학교 친구 S의 집들이 가 있었다.
S는 월세에서 전세로 옮겼고
집이 너무 환해서 좋다고 친구들이 꼭 와서
집을 봐주었으면 하는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1년에 한두 번 볼까 하는 모임을 하고
S는 웃으면서 만남을 시작했다가
초록병에 담긴 마법의 물을 들이켜기 시작하면
S의 레퍼토리는 어김없이 남편의 험담으로 시작해
'나 이혼할 거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러곤 삶에 찌든 표정을 짓고 노래방을 외치다
결국엔 택시에 태워져 의도치 않게
일찍 귀가를 하곤 했다.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는 그녀가 늘 불안했다.
이번엔
그런 위험과 불안해서 그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비록 요 며칠 몸이 안 좋았던 나도
오랜만의 외출과 미세먼지에서 벗어나
햇살 좋은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기분 좋았다
S는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재혼을 하시고
힘든 방황의 시절을 거쳐
두 아이를 낳고 박봉의 월급을 가져다주는 남편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가끔 아르바이트도 하며
지냈다.
만날 때마다 그녀의 주제는 늘 본인이
제일 힘들게 산다고 했다.
거기에 맞게 조언이라도 할라치면
너네가 나의 고통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손사래를 치며 아예 귀담아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S의 남편을 잘 알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난 서너 번 취한 S를 데리러 오는 남편분의 얼굴만 기억할 뿐이었는데 이번 집들이에서 마주한 그녀의 남편분은
좋게 말해 순수하시고 나쁘게 말한다면 좀 답답하시다.
뻔한 월급에 대출금 갚기 힘들다고 월세로 지내시다
이번엔 기필코 이사를 가겠다는 S의 강단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왔지만 대출금 갚을 일이
깝깝하다고 하셨다.
그래도 S가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이 집을 좋아하고
각자의 방이 생긴 아이들이 우리 집 좋다고 하니
그것만으로 행복하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남편분은 아니라고 바로 단정 지었다.
현실은 어쩔 수 없는 돈이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처음 환한 얼굴로 맞이했던 순간은 온데간데없고
서서히 술기운이 퍼져 나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일그러지던 그녀는
언성 높이며 불만을 토로하자
금세 순박한 얼굴로 수그러지던 남편 분.
술이라면 무턱대고 들이키고 보는 그녀의 주사가
원수인 건지 그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남편분의 쥐꼬리만 한 월급이 원수인 건지.
그러면서도 분명 둘 사이에 서로를 향하고 있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은 아니더라도 오래 산 세월만큼
연민의 정은 남아 있다고 생각해 한마디 덧 붙였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라는 표현은 꼭 하고 사세요.
누군가는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표현의 방식이
익숙하지 않아 이런 단어는 추상적이고 불편한 단어라고
하는데 난 그럴수록 직접적인 표현과 감정 어린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친구 셋이 타고 오던 택시 안에서 한 친구는 나에게
'매화수 한 병 마시더니 S에게 쓴소리 많이 하더라'라고 했다.
S가 마음 아파할까 봐 쓴소리보다는 S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해줬지만 다음번 만남에도 똑같이 힘든 이야기가 반복되니
솔직히 듣고만 있던 우리도 지쳐했던 건 사실이지 않나.
그래서 S의 취기가 달아오르면 우린 빨리 S를 보내려 했고.
내가 한 말과 행동은 의도가 좋던 나쁘던
뒤돌아서면 분명 후회가 따르는 법인 것 같다고.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비판하느냐 받아들이느냐는
그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가 싫어서 그녀가 나를 안 본다면 난 기꺼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나도 받아들이면 되니까.
말 못 할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있고
결국엔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함을 S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편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