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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또 버티면 반드시 이긴다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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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변명을 위한 핑곗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본문 중에서




작가의 서러움과 슬픔이 담긴 가족 이야기를 꺼낼 때는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어 냈음에 함께 공조되어 울컥하기도 했지만 거리낌 없이 신랄하게 비판한 (그래서 통쾌했지만) 정치권 뉴스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영화 내용을 스포 할 때는 작가가 쓰고자 했던 버티는 삶에 관하여란 취지와 무관하게 들릴 때도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내가 짊어지고 버티어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이 시대의 현란한 삶을 대하는 태도랄까. 솔직 담백하게 써 내려간 사회적 이슈들도 작가의 솔직함에 한몫을 더하며 더 나은 세상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란 걸 알고 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겠다.


인간은 그러니까 어차피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죽는 것이다. 그 과거의 크기에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좌절하지도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짊어질 수 있는 꼭 그만큼씩을 가지고 살아나가면, 그것이 평범한 어른이다. 평범한 어른이 되는 게 가장 쉬운 줄 알았지만 그게 제일 어려운 과제로 자리한 요즘 세상이다.


시골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유년 시절 방학 때면 어김없이 찾았던 나의 외갓집과 친가에 대한 추억을 상기시키며 잠시라도 현재 도시생활의 일탈을 꿈꾸고 싶어서이다. 그렇게 TV를 보다 보면 초록 풍경이 주는 낭만이 좋았다. 무엇보다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시사되었던 어르신들의 인터뷰에선 어린 나이에 시집와 고된 시집살이 철없는 남편의 칠 형제는 기본이고 다섯 명 이상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 많이 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걸 다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냐며 눈가를 스윽 훔치기도 하고 먼 산을 바라보는 시야를 담아낼 때면 그렇게도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던 삶을 사셨다는 데 주목된다. 그러다 보면 나는..이라는 정접에 다다라 많은 생각이 스쳤기에 또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 가며 나 또한 내일을 버티어 내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제나 록키 발보아 이야기로 끝을 맺고 싶다던 작가는 버티는 삶에 관하여란 소제목으로 영화 <록키>를 거론했다. 지난 세월을 꼰대들과 불화하며 답답하게 보낸 서른 살의 한 남자가 세상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온전하게 증명해내는 이야기로 그의 해답은 이기든 지든 끝까지 자기 힘으로 버티어내는 데에 있다고 한다. 이기는 것도, 좀 더 많이 거머쥐는 것도 아닌 세상사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버티어내는 것으로 록키 발보아가 했던 행동을 주시했다. 버티는 삶이란 웅크리고 침묵하는 삶이 아닌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버티고 버티라고 끝까지 야기한다.


내가 받은 상처가 제일 큰 것인 양 자랑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나 상처는 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직시했을 뿐이고 나 하나가 쓰러지기엔 난 누군가에게 소중한 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결연한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난 버티기로 했다. 여 보란 듯이.

소신 있는 그의 발언에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나약함의 불씨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걸 느낀다.

누구에게나 햇살은 공정하게 내리쬔다.

그 햇살을 만끽했을 때 하루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행복으로 승화시킬 것인지 덥다고 짜증으로 일관되게 얼굴을 일그러트릴 것인지는 오직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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