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

최현숙 [작별 일기]를 읽고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남들 고생만 시키며 살아서 뭐 하냐?"

"우리가 아무것도 못하고 엄마 고생만 시킬 때, 엄마가 우릴 먹이고 키워 줬잖아.

그러니 이제 엄마는 받기만 해도 되는 거지....

엄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열정적이고 당당하고 똑똑한 여성이었잖아. 지금도 그렇고."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본문 중에서



62세의 작가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그녀의 엄마에 대해 4년여의 기록을 하며 다가올 작별을 때론 담담하게 때론 가슴 먹먹함을 애써 눌러가며 써 내려갔다. 작가의 어머니는 무능력하고 청각 장애가 심하고, 분노 조절을 못 하던, 그리고 지금도 언제 그럴지 모르는 남편을 대신해 '전깃불 끄기'로 시작해 돈에 관해선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돈은 당신의 어린 시절 상처와 강박에 이르기까지 미움과 원망이었지만 돌아가실 때는 실버타운에서 머무르며 돈으로 갑질도 해보고 편하게 삶을 마감하실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심해지는 알츠하이머의 증상은 자신을 왜 이곳에 가둬 두었냐며 악다구니를 쓰게도 했고 기저귀를 차야만 한 밤을 보낼 수 있는 점점 갓난아기로 퇴보에 일게 했다. 정신이 말짱하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안 씨네도 최 씨네도 미운 사람 투성이었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사느라 고생들 많았고 실수도 했지만 그래도 모두 바탕이 착하고 열심히 산 사람들이었다'라며 미소를 보이셨고 최후에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며 다섯 자녀 부부와 증손자들의 배웅 속에서 86세의 어머니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 하셨다.


노인 한 분이 어디에서 어떻게 죽어 가는가에 대한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같지만 세상 자신과 가장 가까운 어머니의 들춰내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드러내가며 표현하려 했던 건 어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어떠한 노력도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란 의문만 품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살고 있는 우리네 모두에게 생각의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사연 신청자는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살아계실 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에 괴롭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일상생활하는데 힘들다며 어떡하면 마음이 편해질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법륜스님은 아드님은 지극히도 개인주의자라고 하신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본인이 바쁘다면서 안 찾아뵀던 것도 개인 위주였고 돌아가셔서도 자신이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괴로워하면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 해 드렸던 죄책감이 덮어지는 것도 아닌데 아드님은 지극히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고 생전에 잘 못했다면 돌아가셨을 때 후회스러운 마음은 들 수 있지만 자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마주할 주위에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않느냐고. 돌아가신 분에게 못 해 드려서 죄송하고 또 보고 싶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살아 계신 다른 가족분들이나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한 번 더 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 번 더 하라고 조언하셨다.


예전엔 조금만 아파도 내가 없으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챙겨 주나 싶은 걱정이 앞서서 죽음이란 단어에 불안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딱히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다.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의 이치임을.

자의에 의해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서 건 그것이 운명이었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을 탄탄히 키우고 있다면 나는 오늘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백영옥 [안녕, 나의 빨강 머리 앤]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