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사람

by 김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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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MBTI는 ISTJ이다. 하지만 선택적 외향인인 것도 같다.

규칙을 준수하는 게 마음 편하고, 다소 고지식하고,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고, 다수의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좋다. 이런 나의 전직은 초등학교 강사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해 학원일을 시작으로 학교에서도 일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는 숨이 가쁘지만, 수십 개의 시선을 받으며 일했다. 보통 2개 학년을 맡아 가르쳤으니 일 년에 만난 아이들이 얼추 300명, 제한된 시간 40분 동안 많은 것을 전달하기 위해 나는 참 말을 빨리 했던 것 같다.


얼마 전 괌에서 물놀이하다 산호바위에 정강이를 부딪쳐 상처가 깊게 났다. 정강이는 바로 아래 뼈가 있어 원래 상처가 깊고 더디 낫는단다. 습윤밴드와 연고를 바르고, 새살이 돋은 후 흉터와 향후 치료를 상담하려고 피부과에 다녀왔다. 의사는 상처난지 얼마나 되었냐며, 혼자 치료 다 하고 이제야 왜 왔냐고 물었다. 검색해 보니 흉터 치료는 딱지 생긴 후부터 하는 거라더라고 말하니, 바보 같은 소리 말라며 면박을 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피부이식부터 레이저 치료 등등 치료 방법 네 가지를 속사포로 얘기했는데, 그 말이 너무 빨라 다 주워 담지도 못했다. 의사는 자신의 지식을 막 쏟아내고는 나가보라며 책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황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말이 느린 사람을 답답해하며, 영상을 1.5배로 시청하는 나에게도 의사의 말은 20%만 남고 흩어졌다. 이날의 치료는 레이저를 쐬고, 소독과 드레싱으로 마무리되었다. 언제 다시 오라는 말도 없었다.


나는 돈이 안 되는 환자였던가?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를 상대해야 하는 의사 입장은 이해하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일인데, 자기는 잘 알고 있는 지식을 자랑하듯 퍼붓고 볼일 다 봤다는 태도에 기분이 몹시 상했다. 나 역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당연한 것을 왜 모르냐, 내가 알고 있으니 너희도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속사포 교육을 하지는 않았었나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블로그 기자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얻기 위해 이것저것 질문도 많이 하는데, 원치 않는 반응이 나올 때 얼른 상황을 마무리하려고 사람들을 무시한 적은 없었나 반성했다. 다른 사람이 무시당했다고 느끼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준 일은 없었는지 생각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눈앞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뭘 해도 잘되는 사람의 말센스'라는 책이 있다.

청산유수처럼 말만 번드르르한 사람은 미리 경계하지만, 필터 없이 상대방을 찌르고 무시하는 말에는 푹푹 찔리고 베이고 만다. 교양 있는 사람은 손짓 하나에도 우아함이 묻어나듯, 나도 말 한마디에 친절함을 담은 사람이고 싶다. 무뚝뚝하더라도 최소한 불친절하지는 말자. 말을 안 하고 싶지만,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말이 칼이 되지 않도록 나부터 조심해야겠다. 당신 말 한마디에 며칠씩 잠 못 자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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