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 펠로우ㅣ예술가/코다코리아 대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 오늘의 행동을 통해 내일의 변화를 만드는 방법, 혼자 하지 않고 연결되어 만드는 변화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이길보라 펠로우는 농인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녀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정체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창작 및 연대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농인과 청인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경계선 위 이야기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흥미로운데요. 개인의 다양성과 고유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는 이길보라 펠로우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세요.
코다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어요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이길보라, 수어 이름으로는 보라입니다.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인 자질이라 굳게 믿고 창작 활동을 하고 있어요. 한국 코다들의 모임인 코다코리아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코다코리아는 코다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으로 시작했어요. 한국 코다 세 명과 한국계 미국인 코다가 함께 <우리는 코다입니다>라는 책을 쓰며 한국 코다들의 경험 중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지를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코다들이 모여 코다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이를 한국 사회에 공유하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Q. ‘이길보라’라는 이름 앞에 다양한 수식어가 붙습니다.
작가나 영화감독, 활동가로 불리는데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사회활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Artist)와 사회활동을 하는 액티비스트(Activist)를 합쳐 ‘아티비스트(Artivist)’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코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코다(CODA)는 ‘칠드런 오브 데프 어덜트(Children of Deaf Adults,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의 줄임말인데요.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Q. 코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수어를 가장 먼저 배웠어요. 지금도 말하면서 손을 굉장히 많이 움직일 텐데요. 어릴 때부터 손으로 옹알이를 하며 자라 수어는 저에게 세상이자 첫 번째 언어였어요. 그런데 자라면서 보니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가득했고 세상 사람들은 저희 엄마 아빠를 보고 귀머거리, 벙어리, 장애인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하는 거예요. 저에게는 언어에 우위가 없었는데 세상에는 존재했던 거죠.
저는 농인과 청인의 세상을
왔다 갔다 하며 자랐어요.
두 세상 사이의 경계에 있는 이야기들을
아름답고 흥미롭게 여겨왔죠.
‘우리 엄마 아빠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어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늘 설명하곤 했는데요.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사실 저에게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또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농인과 청인의 세상을 왔다 갔다 하며 자랐어요. 두 세상 사이의 경계에 있는 이야기들을 아름답고 흥미롭게 여겨왔죠. 이는 장애 문제이기도, 다양성과 고유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화감독으로서는 <로드스쿨러>와 농인 부모의 반짝이는 세상을 딸이자 감독의 시선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등을 제작했고, 작가로서는 최근 몇 년 간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사회비평집 <당신을 이어 말한다>를 출간했어요. 이렇게 글이나 영화, 활동이라는 매체를 통해 경계의 이야기들을 세상에 전하고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Q. 좌우명이 있나요?
좌우명은 딱히 없어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이를 영화로 만들지 글로 쓸지 광장에 나가 깃발을 드는 게 좋을지 사람들을 모아 프로젝트를 할지 등 ‘어떻게’를 고민합니다. 한국 코다들이 모여 활동하는 코다코리아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죠.
2023년에는 코다 국제컨퍼런스를 국내에 유치하게 되었는데요. 국제 행사를 준비하는 이유도 더 많은 코다들이 모여 코다에 관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단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다를 가시화하는 것이 단순히 코다들을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다양성과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 코다들이 살기 좋은 환경은 농인과 청인뿐 아니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코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수어는 제 모국어입니다.
저는 코다로 태어났고 제 존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멈출 수 없어요.
Q. 혹시 멈추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요?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며 ‘왜 사회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빨리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좌절감을 느끼기도 해요. 어느 날 저와 함께 사는 파트너가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건 네가 원하는 다양성의 사회가 아닐 수도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나와 반대편에서 생각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어야 하고 나보다 오른쪽, 왼쪽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야 다양성의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요.
어딜 가서 어떤 언어를 배워도 수어는 제 모국어입니다. 저는 코다로 태어났고 제 존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죠.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 없어요. 제가 가진 이것들이 저에게는 예술가로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그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롭고 기록되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계속 즐겁게, 저의 방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길보라는 이길보라로 불릴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라요.
Q. 어떤 미래를 꿈꾸고 계신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다양성의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말이죠. 제가 경계를 오가며 발견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좀 더 다른 측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발견하는 연습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또, 누군가에게 맞는 소통방법을 요구하거나 투쟁해서 얻어내는 게 아닌 자연스럽게 고민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해요. ‘너는 나와 이렇게 다르네. 그러면 너와 소통하기 위해 이렇게 환경을 바꿔볼게’라고 먼저 제안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더 많은 사람이 살기 편해지지 않을까요? 각자가 가진 무수히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더 많이 꺼내놓을 수 있기도 할 테고요.
결국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장애인으로 불리는 것이 아닌, 이길보라는 이길보라로 불릴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랍니다.
이길보라 펠로우가 함께하는 카카오임팩트펠로우십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