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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5. 2024

페르세포네 호 - 10화

다시 한번 중앙통제실과 동면실, 그리고 <페르세포네 호> 곳곳을 둘러본 연우는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놓인 디지털시계를 보니21시였다. 그녀는 서랍장을 열어 아까 전 자신이 넣은 노트가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의자에 앉아 치밀하게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앞서 언급했듯 <페르세포네 호>에는 동면캡슐에 연결되어 있는 전용 산소공급장치 외에, 우주선 내부에 산소를 공급하는 커다란 메인산소공급장치가 있다. 중앙통제실, 이동통로, 식당, 그리고 각 승무원의 방에도 이 장치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연우는 바로 이 장치를 조작하려 하고 있었다.

이 장치는 동면캡슐에 연결되어 있는 전용 산소공급장치와 달리 가동방법이 복잡하여 연우는 직접 조작할 수 없다. 하지만 연우는 현재 선장의 권한을 이어받았기에 중앙통제실에서 데메테르를 통한 예약시스템을 통해 이 장치가 몇 시간 뒤 잠시 꺼지도록 간접적으로 조작할 수는 있었다. 물론 이는 원래 그 공간에 사람이 없을 때에 한해서만 허용되는 작업이며 실수로 사람이 머무는 공간의 산소가 차단될 경우 그 유명한3세대 인공지능프로세서가 도입된 데메테르가 알람을 울리고 산소공급을 재개하는 등 알아서 비상조치를 취하기에 이를 통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하 역시 바로 이 점을 언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선장은 사망했다! 이는 현재 데메테르가 오류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연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어리석게도 승무원들은 선장의 사고를 겪은 뒤 현재 데메테르의 통제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의 목숨이 선장의 권한을 이어받은 조종사인 자신에게 저당 잡혀 있다는 사실 역시 깨달았어야 했던 것이다.

연우가 산소공급장치의 중단부터 마르스 게이트 도착, 이후 지구로 귀환하는 일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획을 꼼꼼히 세운 시간은 새벽2시였다. 승무원들의 수면패턴으로 미루어 볼 때 이제30분 뒤면 계획대로 일을 처리하기에는 넉넉한 시간이 될 터였다. 가슴을 졸이며 대기하던 연우는 이내 계획한 시간이 되자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자신의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중앙통제실로 향했다.     

다음날, 기상시간이 지났음에도 연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진석은 연우의 방에 찾아갔다. 그런데 불러도 반응이 없자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진석이 다른 승무원들을 불렀으나 연우의 방에 출입할 방법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하던 중 동하가 중앙통제실에서 데메테르를 호출해 물어보자고 제안했다.

<데메테르- 이연우 선장의 방에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이연우 조종사의 사망이 확인되어 다음 업무 수행권자인 정진석 기관사에게 출입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왼손엄지손가락 지문이 출입코드입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일동은 연우의 방으로 다시 달려갔고 진석이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평온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 연우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그녀의 얼굴색은 죽은 선장과 마찬가지로 새하얬다.     

모두가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멍청히 서 있던 승무원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진석이 연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여기저기 연우를 만져 보며 한참 관찰하더니 일동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급기야 나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고, 동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어딘가로 뛰쳐나갔으며, 태수만이 비교적 침착한 모습으로 계속 서 있었다.

“죽었나?”

“네.”

태수의 물음에 진석이 답한 다음 연우의 시신을 가리켰다.

“괜찮으시다면 일단 시신을 옮기시지요.”

태수가 시신 운반용 가방을 가져와 진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연우의 시신을 가방에 넣고 들어 선장을 안치해 놓은 냉동창고로 옮겼다. 나연은 울먹이며 그 뒤를 따랐다.

“동하 씨는 어디에 있지?”

진석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으나 태수와 나연 역시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일단 다 같이 동하 씨를 찾아보죠.”

진석의 제안에 이들은 방금 전까지 머물렀던 식당과 승무원휴게실 등을 돌아다니다가 동하의 방 앞에 다다랐다. 진석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동하 씨, 혹시 여기 있어?”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 내 방에서 떨어져!”

겁에 질린 동하의 목소리가 들리자 진석은 태수와 나연을 번갈아 바라보며 양팔을 교차해X자를 만들어 보였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석은 앞장서 움직여 일동을 중앙통제실로 인도했다.

“끔찍하군.”

두 번째 사건에 대해 태수가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저희 이제 어떡해요?”

나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진석이 모니터를 보며 답했다.

“이제 마르스 게이트에 도착하기까지 채 4시간도 남지 않았어요. 필요하면 데메테르가 그곳 관제센터와 연락해 입항할 거예요. 그때까지는 어차피 딱히 할 일은 없으니 방금 전의 사건을 짚어봅시다. 연우 씨에게서도 외상은 발견할 수 없었고 함께 보셔서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사인은 선장과 같은 질식사로 보였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연우 씨가 밀폐된 자신의 방에서 문을 잠근 채 죽었다는 겁니다. <페르세포네 호>의 개인실은 방의 주인 외에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어요. 예외적으로 화재 발생 등 비상시에는 열 수 있지만, 그런 경우도 아니었고요.”

“우리가 잠든 동안 연우 씨의 방에 산소공급이 차단된 거겠지. 그리고 그렇다면, 이번에도 데메테르는 안전조치고 뭐고 아무것도 취하지 않은 거고 말이야. 프로그램에 오류가 발생한 게 틀림없어. 젠장!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렇게 안일하게 잠이니 자다니! 너무 멍청했어!”

드디어 태수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진석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정말 데메테르에게만 사고의 원인이 있다고 봐도 되는 걸까요?”

“무슨 말이야? 이 상황에서 달리 또 무슨 원인을 찾을 수 있어?”

태수가 되묻자 진석이 한 번 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산소공급이 차단되었음에도 데메테르가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데메테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뿐이에요. 실제로 누가 연우 씨의 방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를 껐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라는 거죠.”

“데메테르에게 오류가 발생해서 산소공급장치가 꺼졌나 보지. 어차피 우리가 자는 동안에는 데메테르가 장치를 모두 통제하는 거잖아.”

당연하지 않냐는 듯한 태수의 말에 진석이 고개를 저었다.

“사고를 당한 게 한 사람뿐이었다면 저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류가 발생해서 선장의 동면장치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가 우연히 꺼졌고, 또 오류가 발생해서 개인실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가 우연히 꺼졌다? 우연히 오류가 연속으로 일어났다고요? 그것도 하필이면 여기에 있는 수많은 장치 중에 산소공급장치에서만요?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럼, 오류가 아니면 뭐라는 거야? 그렇게 창피를 당했으면서 이번에도 또 누군가 산소공급장치를 껐다고 말할 생각인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나연이 긴장된 표정으로 진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석은 비아냥거리는 태수를 그저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돌발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우리의 예상범위를 벗어난 일이 이 <페르세포네 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의 수준으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일이요.”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제 초월적인 존재에게 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겠군.”

태수가 코웃음 쳤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나연이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

“초월적인 존재라... 초월적인 존재... 데메테르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데메테르요?”

진석이 알 수 없다는 듯 묻자 나연이 말했다.

“그래요, 데메테르. 우리는 데메테르가 통제하는 공간 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게다가 데메테르에 탑재된 인공지능의 성능이 굉장하다면서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사건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한 최대한 물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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