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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5. 2024

페르세포네 호 - 마지막 화

진석은 속으로 미심쩍어했지만 별다른 이견을 낼 수는 없었다. 나연은 중앙통제실의 컴퓨터를 이용해 명령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데메테르- 연우 씨의 사망시점은 언제야?>

<3시25분입니다.>

<데메테르- 그때 연우 씨 개인실의 CCTV를 보여줄 수 있어?>

<그곳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데메테르- 연우 씨 개인실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를 조작한 사람이 있어?>

일동은 숨을 죽이고 모니터에 집중했다.

<없습니다.>

“이번 사고도 사람의 범행이 아닌 것은 확실한 모양이네요.”

그런데 나연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진석이 뭔가 떠올린 듯 다급하게 말했다.

“나연 씨, 연우 씨 개인실의 산소공급장치가 아니라 아니라 승무원 개인실 전체의 메인산소공급장치에 손을 댄 사람이 있냐고 질문을 바꿔보죠.

<데메테르- 승무원 개인실 전체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를 조작한 사람이 있어?>

<있습니다.>

나연은 진석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 뒤 명령어를 입력했다.

<데메테르- 그게 누구야?>

<이연우 조종사입니다.>

뜻밖의 답변에 놀란 나연이 이번에는 태수와 눈을 마주쳤다. 진석은 예상대로라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연이 다시 명령어를 입력했다.

<데메테르- 이연우 조종사가 산소공급장치를 어떻게 조작했어?>

<PR-3, PR-4, PR-5, PR-6의 산소공급장치가 새벽4시에10분간 꺼지도록 조작했습니다.>

데메테르가 나열한 산소공급장치번호는 각각의 승무원의 개인실로 연결된 산소공급장치번호와 동일했다. 충격적인 메시지에 나연이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진석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나연이 조작하던 입력창 가까이 다가가 빼앗다시피 자리를 차지한 뒤 자신이 명령어를 입력했다.

<새벽4시에 산소공급장치가 꺼졌어?>

“맨 앞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았어.”

“젠장.”

태수가 슬쩍 말하자 진석이 비속어를 내뱉은 뒤 다시 명령어를 입력했다.

<데메테르- 새벽4시에 산소공급장치가 꺼졌어?>

<꺼지지 않았습니다.>

<데메테르- 왜 안 꺼졌어?>

<제가 그 조작명령을 취소했습니다.>

<데메테르- 왜 취소했어?>

<승무원의 안전 보장은 제 가장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데메테르- 연우 씨 방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를 조작한 사람이 있어?>

<없습니다.>

“그거, 방금 했던 질문이잖아.”

뒤에 서 있던 태수가 말하자 진석이 뒤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 명령어를 다시 입력했다.

<데메테르- 연우 씨 방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를 조작한 존재가 있어?>

<있습니다.>

태수와 나연이 놀라서 자신들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진석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서 명령어를 입력했다.

<데메테르- 그게 누구야?>

<데메테르, 바로 저입니다.>

<데메테르- 어떻게 조작했어?>

<3시25분에10분간 산소공급장치가 꺼지도록 조작했습니다.>

<데메테르- 네가 연우 씨를 죽인 거야?>

<네.>

태수는 숨을 죽인 채 침을 꿀꺽 삼켰고, 나연은 어느새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석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계속 명령어를 입력했다. 

<데메테르- 왜 연우 씨를 죽였어?>

이 대목에서 데메테르는 한참 동안 메시지를 출력하지 않았다. 전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긴 간격이었다. 하지만 이내 모니터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적절하게 조치한 것입니다.>     

진석과 태수, 나연은 동하의 방 앞으로 다가가 다시 동하에게 말을 걸었다. 여전히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동하는 데메테르에게 질문하여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자 조금씩 설득되어 결국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방에서 나온 동하를 포함해 남은 승무원 모두가 중앙통제실에 모였다. 현재 시간은 지구, 대한민국 시간 기준으로 10시30분, <페르세포네 호>는 드디어 30분 뒤 마르스 게이트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데메테르와의 문답을 통해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의 진상을 대부분 알아내는 데 성공했어. 한 번 들어봐.”

동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석이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동면에 들기 전 동면실의 CCTV 화면을 함께 봤던 것을 기억하고 있지? 그리고 우리의 예상과 달리 선장이 우리 중 가장 늦게 동면캡슐 안에 들어갔던 것도 기억하고 있지?. 그때는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당연한 모습이었어.”

“당연하다니요?”

“선장은 동면기간 동안 우리 모두를 살해하려 한 거야.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동면 중인 동면캡슐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가 자신이 조작해 놓은 시간에 꺼지도록 설정하고 난 다음 자신의 동면캡슐 안에 들어갔어. 동기는 아마도 내가 그때 언급했던 것처럼 포상금을 독식하기 위해서였겠지.”

동하가 놀라 입을 벌리며 태수와 나연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씁쓸하게 웃으며 동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데메테르가 그 조작명령을 거부하고 말아. 산소공급장치가 꺼지면 동면 중인 사람이 죽게 되니까 안전을 위해 그렇게 판단했대. 이 부분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게 그거였잖아요. 데메테르가 인공지능을 통해 알아서 판단해 예방조치를 취할 거라고요.”

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누구도 예상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나. 바로 선장이 동면 중인 동면캡슐의 산소공급장치를 데메테르가 잠시 동안 꺼버린 거지.”

“데메테르가요? 그럼, 데메테르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에요?”

동하가 외치자 진석이 즉시 대답했다.

“맞아.”

“말도 안 돼요! 그런 명령을 내리는 건 불가능할 텐데?”

진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태수와 나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추측인데 말이야. 어제 네가 말했던 긴급피난룰, 기억하고 있지? 뭐였더라, 사람의 생명이 위험하면...”

“사람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급박한 경우에 한해, 사람이 다칠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본연의 업무를 수행한다.”

동하가 읊조렸다.

“그래, 그것 말이야. 나는 인공지능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입력하지 않은 내용이어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는 게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핵심이잖아?”

“그렇죠.”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숨을 크게 내쉰 뒤 진석이 말을 이었다.

“선장이 모두의 산소공급장치를 끊도록 조작한 것을 보고 데메테르는 학습했던 거야. 선장을 놔두면 계속 비슷한 짓을 저질러 다른 사람을 살해할 거라고 말이야. 이것도 네가 했던 말인데, 뭐랬더라. 위험인자를 찾아서 제거한다고 했던가?”

“네. 선제예방조치로 위험인자를 찾게 되면 제거한다고요.”

“맞아, 그거. 즉, 데메테르가 선장을 위험인자로 구분해 제거한 거지.”

동하는 그래도 미심쩍은 듯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했지만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장에 매달려 있는 모니터를 한 번 바라본 뒤 물었다.

“그럼, 연우 씨는요? 연우 씨도 데메테르가 죽인 건가요?”

“그래.”

“그럼, 연우 씨도 우리를 죽이려 했다는 건가요?”

새로운 소식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연거푸 놀라고 있는 동하에게, 진석이 주머니에서 노트를 하나 꺼내 건넸다. 동하는 즉시 노트를 펼쳐 보았다.

“이건...?”

“우리가 연우 씨의 방을 뒤져서 찾아낸 노트야. 보다시피 우리가 이번에 진행한 세레스에서의 연구결과가 모두 담겨 있지.”

진석은 태수와 나연을 한 번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태수 씨와 나연 씨는 이런 노트를 써준 기억이 없대. 미리내와의 계약조건에 의하면 연구결과는 두 사람이 작성해서 전달하게 되어 있거든. 즉,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연우 씨가 연구결과를 빼돌린 거야.”

“아마 선장에게서 얻었을 거야. 세레스에서 연구를 끝내던 날, 선장에게 연구결과를 요약해서 알려준 적이 있었거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태수가 끼어들어 말하자 진석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모든 재앙의 시작이었군요. 선장은 연구결과를 알게 되자 모두를 죽일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 예상할 수 있었겠어?”

태수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나연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우리는 살았으니 다행이에요. 그리고 연우 씨가 한 일도 설명해 줘야죠, 진석 씨.”

“뭐, 그래요. 선장과 비슷하게 간밤에 우리를 죽이려 했던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연우 씨도 포상금을 독식하려 했던 모양이야.”

“간밤에 죽이려 했다고요? 우리를?”

동하가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그래, 맞아. 연우 씨는 우리가 잠든 사이 각자의 개인실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를 꺼서 우리를 죽이려 했어. 선장과 마찬가지로 예약시스템을 이용해서 말이지. 그 뒤는 짐작이 가겠지만, 선장의 사고 당시와 동일하게 데메테르가 그 조작명령을 거부한 다음 오히려 연우 씨의 방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를 꺼버린 거야. 그래서 연우 씨는 다른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방에서 문을 잠그고 혼자 죽게 된 거지.”

동하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비록 자신이 장담한 대로 데메테르가 사람을 죽이도록 조작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이 되었지만,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최적이라고 판단한 방향으로 본연의 업무를 수행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데메테르의 선택은 오류가 아니라 그저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나타난 길이었던 것이다.

“결국 데메테르가 우리 모두를 지켜준 거로군요.”

“그래, 맞아. 데메테르 덕분에 우리 모두 살 수 있었어. 고마워해야지.”

동하와 진석의 대화가 끝난 뒤 머지않아 <페르세포네 호> 전체에 알림음이 울리더니 모니터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승무원 여러분, 이제 우리는 곧 마르스 게이트에 진입합니다. 긴 여행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사람은 모두 조종석으로 이동해 저 유명한 마르스 게이트의 풍경을 감상했다.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은빛의 구조물들이 태양빛을 반사해 빛나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데메테르는 훌륭한 솜씨로 우주선을 조종하여 <페르세포네 호>와 마르스 게이트를 완벽하게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내 <페르세포네 호>의 승무원들이 연결부를 통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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