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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5. 2024

페르세포네 호 - 9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씻고 나온 태수는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곱씹었다. 선장의 사망, 인공지능프로그램을 두고 벌어졌던 동하와의 설전,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던 진석의 주장, 서로 확연히 다른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대미를 장식했던 자신의 한 마디. 태수는 뿌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혼자서 미소 지었다.

‘역시 아무리 인공지능이라고 추켜 세워봤자 프로그램 따위는 믿을 게 못 된단 말이야.’

동하, 그 잘난 척하던 애송이는 중앙통제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을 리 없다고 그렇게나 우기더니 막상 진실이 밝혀지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을 터다. 태수는 방금 전 식당에서 동하에게 한 마디 하려다가 기껏 만들어진 좋은 분위기를 망칠까 우려하여 가만히 있었다.

‘그냥 한 마디 해줄 걸 그랬나.’     

하지만 동하는 아직 한참 어리다. 태수는 이럴 때는 나이 든 자신이 한 발자국 양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내일이면 마르스 게이트에 도착이다. 거기에서 중앙통제시스템을 비롯해 <페르세포네 호>의 장치를 손보고 좋은 날짜를 기다려 지구를 향해 출발한 다음 또 한 번의 동면에 들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날 것이다. 태수는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동하는 식당을 정리한 뒤 승무원휴게실을 방문했다. 휴게실에 설치되어 있는 미디어플레이어로부터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연이 그 음악을 들으며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마르스 게이트에 도착이네.”

휴게실로 들어오는 동하의 모습을 보고 나연이 말했다.

“그러게요. 거기가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서요?”

“아, 동하 씨는 가본 적이 없구나? 나는 한 번 가봤는데, 정말 멋진 곳이야. 인류가 만든 최첨단우주도시가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어. 장담하건대 상상 이상일 거야. 기대해도 좋아.”

나연의 웃음을 마주하며 동하는 기분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연은 자신보다8살이 많았지만 동하는 그런 나연을 편하게 느끼고는 했다.

“저… 그런데, 나연 씨도 사고의 원인이 프로그램에, 그러니까 데메테르에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지 않겠어? 그렇게 묻는 걸 보니 너는 여전히 거기에 동의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네? 그럼, 네 생각은 뭔데?”

나연이 되묻자 동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대화를 나눈 끝에 결국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예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였어요. 프로그램 오류, 산소공급장치 이상, 그리고 승무원의 범행이죠. 이 중에서 승무원의 범행일 것이라는 추측은 진석 씨의 주요 의견이었는데 아까 전에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고요. 그래서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프로그램 오류가 원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말이 맞나요?”

“맞는 것 같아.”

동하의 이야기를 경청한 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제가 분명히 오류가 없었으며 발생하면 알람이 나타난다고 말씀드렸음에도 결국 모두들 믿지 않으신 거잖아요? 좋아요. 그럴 수 있다고 치자고요. 그런데 두 번째, 산소공급장치 이상을 원인에서 배제할 수 있었던 근거는 진석 씨의 증언 하나뿐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네 말은 실제 원인은 설비의 이상이었으나 진석 씨가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뭐, 일리는 있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뭐 하러 거짓말을 했을까?”

나연이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자 동하는 더욱 열을 내며 말했다.

“그야 자신이 설비 담당이니까 그렇죠. 설비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상황이니까요. 작은 사고도 아니고 사망사고인데,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진석 씨는 선장의 사망이 사고가 아니라 살인사건이라고 역설했던 것이고요.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요?”

휴게실에는 여전히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연은 흥분해 커진 동하의 목소리를 듣고는 혹시 누군가 휴게실로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아무 기색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나지막이 말했다.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네. 가능성은 충분해 보여. 하지만 진석 씨가 설비이상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동면실의 CCTV를 보자고 했을 때는 왜 반대하지 않았을까?”

“아까의 분위기를 떠올려 보세요. 그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보지 말자고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CCTV에서 결국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나오지 않더라도 프로그램 오류로 원인을 몰아갈 수만 있다면 손해 볼 것은 없잖아요. 바로 지금처럼요.”

동하가 말을 마치자 나연이 훅,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입을 가린 뒤 물었다.

“아까 식당에서는 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아무도 믿지 않는데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뭐해요. 거듭 말하지만 프로그램 오류 따위는 발생한 적이 없습니다. 사고 원인은 산소공급장치 이상이고, 진석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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