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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누마

by 이다

그렇다고 누마를 함부로 다루면 곤란합니다. 윤리적으로도 문제고,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문제라구요. 본부장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누가 함부로 다뤘다고 그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말고 얼른 퇴근하기나 .”


입을 굳게 다물고 회의실 문을 나선 앨리는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1.”


앨리의 말을 알아들은 엘리베이터가 문을 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27층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여전히 경이로웠지만 익숙해진 탓에 앨리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안에서 앨리는 자신이 담당한 프로젝트가 예상했던 방향과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막을 있는 방법이 없을지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있는 거라고는 언제나처럼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뿐이라는 사실만이 쓰라리게 다가올 뿐이었다.


<경고합니다. 전방에 화재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차량에 설치된 인공지능제어시스템너스 목소리를 듣고 차창을 통해 앞을 확인한 앨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백 마리의 누마가 저마다 뭔가를 손에 도로 위의 차량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젠장! 운전 멈추고 본부 연결해 !”


통신대기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앨리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다행히 치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연락 잘했어. 소식 들었나? 갑자기 누마가 곳곳에서…”


누마가요? 곳곳에서요?”


그래. 모든 구역에서 누마의 습격 보고가 있어. 3구역은 거의 치안이 마비된 상태라고.”


자신의 차량 옆으로 대피하는 이들이 앨리의 눈에 들어왔다.


저도 83 도로에서 누마들을 목격했어요! 긴급상황입니다! 본부장님, 군대를 출동시켜야 해요!”


누마들이 포효하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한층 커진 불길이 차창에 어른거렸다.


군대까지? 정도 문제는 아니지 않아? 누마는 크기가 우리의 반도 되는 데다가…”


녀석들, 도구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에요.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요. 그리고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곳곳을 습격한 보면 서로 의사소통도 있는 틀림없어요!”


! 하는 폭발음과 함께 멀리서 차례 불길이 치솟았다. 차창을 통해 바깥 상황을 확인하던 앨리의 눈이 어떤 누마의 눈과 마주쳤다. 잠깐 사이 앨리는 눈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폭발적인 감정을 읽어냈다. 하지만 누마가 뭐라고 소리치자 앨리는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십 마리의 누마가 앨리의 차량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언 본부장님! 빨리요! 시간이 없어요!”


통신을 끊은 앨리가 다급하게 외쳤다.


뒤로 돌려!”


이제 누마와의 거리는 지척이었다. 앞장서 있던 누마 마리가 팔을 휘둘러 손에 들고 있던 던졌다. 앨리의 차가 흔들리며 !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빨리 가고 하는 거야!”


<목적지를 입력해 주십시오.>


젠장! 본부로 ! 본부로! 지금 당장!”


명령을 들은 너스가 차량을 움직였다. 누마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앨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앨리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족히 수백 번의 회의가 있었지만, 회의실에서 오늘만큼 많은 얼굴을 번에 마주한 적은 없었다.


어쩔 없어요. 일단 누마의 규모를 대폭 줄여야 합니다. 연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말이죠.”


프로젝트 총괄책임자의 말에 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 종결을 알리는 낮고 깊은 울림소리가 퍼질 앨리는 눈을 감았다. 그나마 누마에 대한 연구는 지속하기로 천만다행이었다. 시간이 흐른 회의실에서 이언이 앨리에게 다가왔다.


누마 연구를 부탁해. 본부장이 내려올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언 본부장님은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알잖아.”


자리에서 일어난 앨리는 쳐진 회의실 문으로 향하는 이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언이 문을 나서자 앨리 역시 뒤를 따랐다. 복도의 어둠 속으로 이언이 사라진 뒤에도 앨리는 한참을 있었다.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통유리 너머로 수십 대의 비행체가 현란하게 날아다니는 눈에 띄었다. 모습을 바라보던 앨리는 눈을 감았다 발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59.”


사각형 공간에 앨리의 침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4 보고서 시작. 누마의 습격 사건은 진압되었으나 8구역을 제외한 모든 구역에서 피해가 보고됨. 3구역의 피해가 가장 컸으며 진압 과정에서 77마리의 누마를 사살. 생포한 560마리 우두머리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 21마리는 즉결 처분. 나머지는 검사를 거쳐 연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체를 제외하고 처분 계획…>


문득 보고서를 작성하던 앨리의 머릿속에, 자신을 바라보던 누마의 눈이 떠올랐다. 앨리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보고서를 내려갔다.


<누마의 지능이 어떤 수준인지 신속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음. 그리고 이를 위해 연구소의 1 목표를 누마가 사용하는 언어의 이해로 선정해야 하며…>


모니터에 비치는 보고서에 검은색 문자가 계속 채워져 갔다.


<이들은 모항성으로부터 빛의 속도로 8 20 떨어진 천체에 광범위하게 퍼져 살고 있었음. 천체는 모항성을 공전하는 동안 365 자전하며, 천체의 3.7분의 1 크기인 위성 하나를 가졌음. 현재 해당 천체는 식민지화 과정에 있으며 98 게이트를 통해 워프할 있음. 자세한 정보는 1 보고서 참고 바람. 이상, NUMAH 프로젝트 24 보고서 종료.>


보고서를 저장한 의자에 몸을 눕힌 앨리가 개의 다리를 뻗었다. 모니터에는 팔과 다리를 가진 누마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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