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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30. 2021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아직도 가끔 그 시절이 떠오르는 이유

유년시절의 내가 살던 서울의  동네에는,  끝에 커다란 파란 대문이 달려 있는 어떤 골목이 있었다.


그리고 대문을 지나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50걸음 안에 갈 수 있는 집만 8가구 정도 있던 그런 거주지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가구들 중 하나에 살았더랬다.


마침 그 가구들에는 5~9세 정도의 아이만, 합쳐서 10명 정도 있었기에 그곳의 아이들은 살판이 나 있었다.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누군가 얘들아, 노올자~! 라고 소리치면, 집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놀이터로 몰려가 흙장난도 치고, 엄마가 준 100원짜리로 빠삐코도 사 먹던 그런 기억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이무 걱정 없이 놀다가 해 질 녘이 되어 우리가 나왔던 예의 그 파란 대문을 지나오면, 한 아이의 어머니가 얘들아, 라면 먹고 가~ 라고 외치곤 했다. 우리는 또 신나서 우르르 몰려들어간다.


어쩌면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의 방향이 동네 이웃 아이들에게 향했다는 점에서 다르긴 하겠지만.


또 그 시절 대부분의 집이 그랬듯 아버지들이 출근하고 나면, 어머니들은 집안일을 마치고 나와, 좋은 날에는 파란 대문 앞 노란 장판이 깔린 걸상에 앉아 과일도 깎아 먹으며 수다를 떨고, 궂은 날에는 좀 더 넓은 거실이 있던 집에 모여 전을 부쳐먹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셨다.


가끔 추억을 회상하다 보면, 엄마는 지금도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 말하곤 한다. 그 이후의 집안 꼴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그 시절의 나는 행복했지만, 지금 유년시절의 아이들이 나보다 덜 행복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현대에는 또 현대에 즐길 거리들이 있을 테니까. 오히려 더 재밌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각박해진 세상을 떠올리다 보면, 핸드폰도 없이 후미진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나며 놀아도 아무 일 없던, 하루 종일 대문을 열어놔도 걱정이 없던 그 시절이 더 그리워질 때는 분명 있다.


사람들이 정이 없어진 게 아니다. 세상의 무서움이 계속 알려지면서 당연히 조심스러워진 거고, 그래서 더 슬프다. 몇몇의 범죄자들 때문에 우리가 많은 것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어쩌면 나의 향수는 그 시절 숨바꼭질의 즐거움이 아니라, 이제는 느끼기 어려워진 이웃들 간의 애정을 향한 것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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