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Jan 27. 2021

[소설] 미안했던 기억

  부모님과 사이가 멀어진 자녀는 생각보다 많은 가정에서 볼 수 있고, 나 역시도 그런 자녀 중 한 명이다.

  이런 내게 있어 엄마에게 가장 미안했던 기억은 크게 싸우고 집을 나와 버렸을 때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으로 상처를 줬을 때도 아닌, 얼핏 쉽게 잊혀질 수 있어 보이는 조금은 사소한 기억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어느 비 오는 날, 핸드폰은 커녕 삐삐를 가진 사람도 얼마 없던 시절에, 그녀는 쏟아지는 빗 속에서 숫기도 없는 아들이 친구에게 우산을 얻어 쓰지도 못한 채 비를 맞으며 집에 올까 봐 항상 오가던 길목에서 꼬박 1시간을 기다렸지만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는 혹시 아직도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가, 운 좋게도 아들의 담임선생님을 만나 수업이 한참 전에 끝났다는 사실을 듣고는 집으로 달려와, 그제야 웬일로 친구의 우산을 얻어 쓰고 엇갈린 길로 진작에 집으로 돌아와 있던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들은 평소와 달리 집에 엄마가 없었음에도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고 엄마를 보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칭얼댔다. 혹시나 어린 마음에 아들이 미안해할까 봐 그랬을까? 그녀는 어떻게 왔는지만 묻고는 자초지종을 들은 뒤 웃으며 밥을 먹자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은 채.

  아들이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것은 다음날 학교에서 선생님과 만났을 때였다. 얘기를 들으며 엄마에게 몹시 미안했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기는 어려웠던 아들은 결국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뒤 엄마에게 넌지시 물어봤을 때, 엄마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기억조차 하지 못 하고 있었는데도.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엄마와 나는 수없이 많이 싸우며 서로에게 상처를 줬고, 서로를 예전만큼은 사랑하지도, 걱정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날의 기억만 떠올리면 나는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엄마에게 미안하다. 따지고 보면 그 정도로 기억에 남을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순간도 완전히 잊히지가 않는다.

  도대체 왜일까? 아마도 아들이 미안해할까 봐 자신이 고생했다는 사실조차 애써 숨길 정도로 지금보다 훨씬 더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던 당시의 엄마에게, 결국 그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엄마를 지금보다 훨씬 더 사랑했을 당시의 내가, 시간을 넘어 지금의 나에게 평생토록 잊지 못할 마음의 짐을 지워준 것이 아닌가 싶다.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 줄도 모르고 나 혼자 집에 돌아와 놓고는 엄마가 고생한 줄도 몰랐어. 미안해, 엄마."

  이렇게 말했다면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나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그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오늘도 나는 후회를 반복한다. 아마 평생 그럴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