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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ug 25. 2021

[소설] 행복이 돌아올 자리

  어린 시절 나는 특히 만두를 좋아했다. 그리고 초등학생 시절 집 근처에는 한 판에 이천 원씩 하는 만두집이 있었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그곳을 시간이 나면 가족들과 함께 으레 방문하곤 했었다.

  만두 외에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경제적 형편 때문에 자주 가지는 못 했던 고깃집 정도였다. 햄버거나 치킨, 피자 따위를 그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던 당시의 나에게, 만두는 외식으로 먹을 수 있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음식이었고, 그래서 만두집에 앉아 만두를 기다리던 그 순간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가게 문을 들어서 바로 왼쪽으로는 세 명이 한 줄로 앉게 되어 있던 조금은 특이한 자리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자리를 좋아했고, 부모님은 항상 나를 자신들 사이에 앉히고는 앞에 만두 접시를 놔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질을 잘했던 나는 만두를 척척 잘 집어 먹었고, 그런 나와 함께 우리 가족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고는 했다. 어린 날의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원망스러워지는 대목이다. 그렇게 행복하게 웃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면, 허겁지겁 만두를 먹기보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을 텐데.


  시간은 잔인하리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내게 사춘기가 찾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의 투자 실패로 부모님은 시간 내서 만두 한판을 함께 사 먹으러 가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멀어졌고,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집안은 어느새 우는소리로 채워졌다. 나는 나대로 나이를 먹으면서 동시에 예전의 순수함을 조금씩 잃어갔으며, 그렇게 삶이 힘겨워지면서 이제 다시는 예전의 행복을 느끼기 어려울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맞아 들어가던 어느 날 저녁, 문득 만두가 다시 먹고 싶어져 집을 나섰다.

  가게는 여전히 북적거렸고, 우리가 자주 앉던 그 자리에는 누군가 앉아 있었다. 나는 비어 있는 다른 자리에 혼자 앉아서 주문을 했다. 방문하지 못 한 몇 년 새 바뀐 곳은 없는지 내부를 둘러보니 언제나처럼 부모님과 함께 만두를 먹으러 온 아이들이 많았다. 왁자지껄한 그곳에서 나는 조용히 앉아 만두가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마치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위화감에 휩싸였다.

  테이블 위의 수저통을 열고 젓가락을 꺼내고, 종지에 간장을 따르다가 소매에 몇 방울이 튀고 말았다. 동시에 똑같은 경험을 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핀잔을 주던 엄마의 모습과 괜찮다며 웃어 주던 아빠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간장을 따르던 내가, 이 자리에 없는 부모님이 동시에 원망스러웠다.

  이윽고 만두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나는 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앉아서 먹던 행복했던 순간이 눈앞에 아른거려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만두를 욱여넣는 모습을 보이기가 부끄러워진 나는 채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세 장을 꺼내 아주머니에게 건네고는, 조용히 가게를 나섰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더 이상 만두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꼭 마지막으로 먹었던 만두의 기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다른 맛있는 음식들을 접했고, 다른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나의 행복은 더 이상 집안에 있지 않았고, 추억은 그저 잊힌 옛이야기의 한 조각이자, 슬픈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우울함의 기폭제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네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보기로 한 날에, 나는 집 근처에서 약속이 있음을 어머니에게 굳이 알리지 않은 채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만두집 근처에 와서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북적거리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더 가까이에서 내부를 살피니 예의 그 왼쪽으로 세 명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던, 우리 가족이 늘 앉던 그 자리가 비어있었다.

  지나간 시간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릴없이 그때가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과거를 잊을 수 있다면, 그대로 잊고 살아가도 된다. 하지만 잊을 수 없다면, 결국 받아들여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이유는 기억 속 저편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여전히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려 주는 메시지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물론 행복했던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우리의 사이도 그만큼 멀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리워하고 있다면, 부모님도 그리워하고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든 다시 여기에 함께 앉을 수 있다면, 거짓말같이 행복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친구에게 미안하다며 약속을 미루자고 말했다. 부모님께는 전화를 걸어 이곳으로 나오시라고 말씀드린 뒤, 가족이 함께 앉던 그 자리 한가운데에 앉아 주문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옛날로 돌아가 행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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