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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02. 2021

복수에 대한 단상

복수의 심리적 허용 범위란?

복수는 절대로 옳지 않은 행위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근거  하나는 ‘복수를 한다고 해서 되돌릴  있는 것은 없다 말인  같다.


그런데 이 말은 분명 옳지만, 복수자의 입장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왜일까?


한 번 역으로 생각해보자. 되돌릴 수만 있다면 복수를 하는 사람은 현저히 줄어들 거다.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기에, 그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하는 분노가 복수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복수란 되돌리기 위해 행해지는 것보다, 오히려 되돌릴 수 없기에 행해지는 것에 가깝다.



만일 당신이 큰 잘못을 저질러 타인에게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혔고, 누군가 그 복수를 위해 당신을 감금했다고 하자. 그 사람이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풀어 ‘복수를 해서는 안 되는 타당한 이유’ 를 말해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풀어준다고 말하고 있다.


“복수를 한다고 되돌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아마도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내가 당신을 감금했다면, 용서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럼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큰 잘못을 저질러서 피해를 입혀 정말 죄송합니다.” 그 사람의 모습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이 그나마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을까?



복수란 옳은 행위라 보긴 어렵지만, 행위의 이유에는 분명 이해가 가는 측면도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로 복수를 행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단죄하는 미디어에 열광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미디어에서 나오는 복수를 당하는 피해자(?)들, 또는 복수를 막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죄를 뉘우치거나 주인공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어쭙잖은 논리로 주인공을 제지하려 한다.


왜일까? 간단하다. ‘저런 놈들은 복수를 당해도 싸다.’ 는 심리가 보는 이들에게 복수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분명 그중 누군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주인공에게 동조하는 사람은 급격히 줄어들 거다.


그래서 아마도 심리적인 측면에서 복수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딱 그만큼만 이해 가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복수의 타당함을 논하기 이전에 필요한 건, 잘못한 사람의 인정과 사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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