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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17. 2021

젊음과 축복

질문에 답하기 전에 젊음과 축복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듯싶다.


젊음이란 나이가 어리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어린 걸까? 그저 자신이 젊다고 하면 젊은 거고, 반대로 늙었다고 하면 늙은 거다. 그래서 젊음에 객관적인 기준은 없을 것 같다.


축복이란 복을 빈다는 뜻이다. 그래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떠한 존재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종교인들은 이 존재를 신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정의에 따라 젊음이 축복이라는 건, 그렇게 누리고 있는 ‘주관적인 젊음’이 자신에게 ‘복으로 느껴지는 사람’에게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분명 어딘가에는 젊음이 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젊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희생당하기도, 젊음의 아픔을 논하면 복에 겨운 소리로 치부당하기도 하니까.


그런 이들에게 젊음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저주인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한다. 비록 지금은 젊음이 자신에게 아픔만을 가져다준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아픔이 밑거름이 되어 미래에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럴 때 뒤를 돌아봐도 젊음이 그저 아픔이었다고 여기게 될까? 그렇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젊음의 기준은 없기에, 결국 그렇게 행복한 미래의 자신 역시 젊음을 만끽하고 있을 수 있다. 즉, 젊음이 축복이든 아니든 그것은 현재에 국한된 의미라는 거다.



따라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것은 개인마다 다르고, 정해진 것도 아니라고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젊음이 축복인지에 대한 대답 자체보다도, 젊음이 축복이   있도록 살아가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젊을 수도, 언제든 축복받은 삶을 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젊음은 축복보다는 주어진 ,  선물에 가깝다. 그리고  선물이 마음에 드는 삶을 살 수 있을지는 결국 자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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