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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30. 2021

[소설] 초콜릿 인생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법정교육을 들으러 온 수강생들은 대개 호응이 별로 없어 더욱 쉽지 않다.


오전의 강의가 그랬다. 힘차게 인사를 하며 들어가 분위기도 띄워볼 겸 넌센스 퀴즈를 몇 개 내보기도 하고 가벼운 농담을 건네보기도 했지만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강의를 진행하긴 했지만 싸늘한 반응은 계속 이어졌다. 그나마 대놓고 엎드려 자는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빠, 오늘 몇 시에 들어와?"


이제 다섯 살 된 딸이 출근하기 전 내게 매달리며 물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안아주며 말했다.


"아빠가 오늘은 일하는 곳이 멀어서 좀 늦을지도 몰라. 그래도 저녁 먹기 전에는 꼭 올게!"

"정말이지? 아빠, 약속!"


얼마 전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하는 방법을 알려준 뒤로 딸은 기회만 있으면 나랑 약속을 하려 했다. 나는 그 자그마한 손가락에 내 투박한 손가락을 걸어 약속한 뒤 집을 나섰다.


오후의 강의 역시 진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의 경험담을 재밌게 풀어나가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웃음과 호응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건 마스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아무래도 강의평가도 좋을 것 같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지난번 평가지에 적혀 있던 '강의를 너무 늦게 끝내줍니다' 한 마디에 불려 가 융통성 있게 진행하라는 경고를 받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 30분 빨리 강의를 끝낸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강의를 진행해야 하는 건지 수강생의 비위를 맞춰 줘야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늘은 한 시간 일찍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강의평가 좀 잘 부탁드릴게요."


나의 마지막 부탁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수강생들이 익명의 평가지를 한 군데에 모아 제출하고 나가는 것을 기다려 그 평가지를 모아 평가원에 전달했다.


"주 선생님, 잠시만요!"


집을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평가원 소속의 김 부장님이 저만치서 나를 불러 세웠다. 그는 평가지 한 장을 내게 보여줬다.


[강의가 지나치게 산만하고 본인의 경험담과 같은 쓸데없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영양가가 별로 없는 강의였어요.]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평가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내 김 부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이해는 합니다. 이해는 해요. 강의를 모두의 입맛에 맞추기 어렵다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 주 선생님의 강의에서만 이런 평가가 나온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생각 좀 더 해 봐주세요. 또 이렇게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면 제 입장도 곤란해집니다."


나는 죄송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김 부장님은 알겠다고,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말하며 평가지를 홱 낚아채 뒤돌아 휘적휘적 제 갈길을 갔다.


차에 올라타 양손바닥에 고개를 묻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마음이 진정되지가 않았다. 내 방식이 잘못된 걸까? 그냥 일이 맞지 않는 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때 진동소리가 들렸다.


"아빠, 언제 와?"


딸의 목소리에 갑자기 왈칵, 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응, 아빠 이제 출발해. 우리 딸, 혹시 먹고 싶은 것 없어?"

"나 그러면 쪼꼬렛 먹을래. 빨리 와, 아빠!"


나는 통화를 끝내고 핸들 위에 엎드렸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고 그 눈물은 이내 내 얼굴을 타고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마음껏 울었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들어가 딸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인생은 언제나 고달프다. 그리고 내 딸이 이렇게 고달픈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심정으로 버텨본다. 인생은 결코 초콜릿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딸의 인생만큼은 최대한 달콤했으면, 하고 바라니까.


나는 이내 엔진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액셀을 밟았다. 초콜릿을 받아 들고 기뻐할 딸의 모습을 떠올리니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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